옷을 소재로 한 안데스 작가의 ‘시체옷’ 연작 공연.
옷을 소재로 한 안데스 작가의 ‘시체옷’ 연작 공연.
전시실 안은 건조하고 차분한 분위기다. 말없이 전시실을 거닐던 관람객 여러 명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다. 몇몇은 표정과 몸짓을 극적으로 바꿔가며 소리 없이 통곡하는 시늉을 한다. 자신만 빼고 주변 모두가 울고 있는 예기치 않은 순간,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김보라·김재덕의 무용 공연 ‘꼬리언어학’.
김보라·김재덕의 무용 공연 ‘꼬리언어학’.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다음달 24일부터 열리는 안무가 황수현의 게릴라 퍼포먼스 ‘슬프지는 않은데 울고 싶네’다. 배우 8명이 10월1일까지 전시실과 공용공간 곳곳을 다니며 즉흥 공연을 펼친다.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감성적인 공간에서 타인의 몸짓이 일으키는 감정 변화를 체험하는 게 초점이다.

미술관 안에 몸짓이 들어왔다. 오는 17일부터 10월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2016 다원예술프로젝트: 예기치 않은’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예술 실험 프로젝트로, 13개팀이 사람의 몸과 관련된 즉흥 게릴라 퍼포먼스와 전시, 공연을 차례로 펼친다. 미술관 로비부터 복도, 전시실 곳곳에서 깜짝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사진·영상작가 옥정호는 퍼포먼스 ‘미술관 무지개’(8월30일~9월1일)를 공연한다. 무지개색 레오타드(몸에 달라붙는 발레복)를 입은 사람이 미술관을 걸어다니다 갑자기 몸을 아치형으로 만드는 등 다양한 동작을 선보인다. 복도에 가져다 놓은 러닝머신 위에서 뛰기도 한다. 옥씨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의미로 기억하는 무지개 이미지를 미술관에서 맞닥뜨린다면 어떨지 궁금했다”며 “소소한 소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옷을 소재로 퍼포먼스 작업을 해온 작가 안데스는 ‘시체옷’ 연작 공연(8월17일~9월3일)에서 헌옷 이야기를 풀어낸다. 행위예술가 세 명이 옷을 몸에 붙인 채 이리저리 움직이고, 옷을 장대에 매달아 미술관 로비를 행진할 예정이다.

정식 무용 공연도 열린다. 무용수 김보라와 김재덕은 10월5~7일 무용작품 세 편을 공연한다. 꼬리를 이용한 고양이의 의사표현 방식에서 착안한 ‘꼬리언어학’, 호흡과 멈춤을 소재로 신체 모습에 집중한 ‘브리딩 어택’이다. 미술관 1층의 선큰가든에서 영감을 얻은 동명 작품도 있다.

김숙현과 조혜정은 영상작품과 무용을 아우른 ‘스크린+액션’을 다음달 9~11일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선보인다. 무용수 공연 전후로 분장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이 영상 앞에서 무용수가 춤을 춘다. 무대 앞과 뒤를 모두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있다. 설치예술가 고재욱은 밖에서 안이 보이지만 안에선 밖을 볼 수 없는 특수유리로 1인 노래방을 설치했다. 오는 17~21일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열리는 ‘다이 포’다. 관람객이 현장 접수 후 방에 들어가 노래하는 모습을 전시 오브제로 이용한다. 고씨는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려고 하지만 결국 자기자신의 모습만 보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심리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앞서 7일까지 미술관 내 MMCA필름앤비디오 영화관에서 현대미술과 무용을 접목한 영상작품 상영회 ‘몸+짓’이 열린다. 캐나다의 실험영화감독 노먼 매클러렌이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이는 무용수의 동작을 영화로 재구성한 ‘파드 되’, 베네수엘라 출신 유명 안무가 호세 나바스의 춤을 적외선 열 영상 카메라로 촬영한 필립 베이로크 감독의 3D영화 ‘오라(ORA)’ 등이 상영된다.

국립현대무용단은 “무용과 미술의 단순한 만남을 넘어 이를 통해 우연히 촉발되는 제3의 창작 가능성을 찾으려는 프로젝트”라며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운 감정과 생각을 느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