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View & Point] 뒷북으로 끝나는 산업 육성정책...때로는 '방치의 경영'이 더 효과
‘고’ 시리즈가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다. 이번에는 증강현실 프로그램 포켓몬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는 그때마다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말하지만, 늘 한 박자 늦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한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은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이라는 접근 방법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정보기술(IT)산업 관계자들은 “유효기간이 다 된 경제개발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고 규제나 풀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자정 이후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규제는 해외에서 ‘신데렐라법’이라 불린다. 그만큼 비현실적이라는 말이다. 정부가 산업을 규제하고 지도한다는 마인드로 접근하는 상황에서 포켓몬고와 같은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실리콘밸리의 사례를 보자. 실리콘밸리에는 수많은 창업신화가 있다. 실리콘밸리 1호 벤처기업 HP는 1939년 스탠퍼드대 동창생 빌 휴렛과 데이브 패커드가 창업했다. 사업을 시작한 곳은 패커드의 차고였다. 그들은 첫 제품 음향 발진기를 월트 디즈니에게 팔았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무얼 해주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의 집 차고에서 컴퓨터를 개발했다. 21세, 26세의 두 청년은 ‘애플Ⅰ컴퓨터’를 만들어 50대를 팔았다. 이때 정부가 그들에게 컴퓨터를 주문했다거나 경영지도를 해주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1994년 제프 베조스는 온라인서점 아마존닷컴을 선보였다. 이듬해 워싱턴주에 있는 그의 차고에서 첫 번째 책이 팔렸고, 2년 뒤인 1997년에 기업공개를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아마존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1998년 인텔에서 일하던 수전 보이치키는 두 청년에게 차고를 빌려주었다. 스탠퍼드대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그곳에서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을 개발했다. 차고를 빌려준 수전은 현재 구글 수석부사장이자 유튜브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이들은 왜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했을까. 아파트 생활이 익숙한 한국사회에서 차고란 낯선 곳이지만, 미국인들에게 차고는 남자들의 비밀공간이다. 자동차와 각종 공구가 있는 차고를 여성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내를 피하고 싶은 남자들은 맥주를 들고 차고로 향한다. 자유로운 상상과 창업이 가능하려면 방해가 없어야 한다.

‘창의적인 사람을 방해하지 말라’는 원칙은 IT산업 이전에도 통했다. 3M 최고경영자(CEO)였던 윌리엄 맥나이트는 어느날 연구실에서 젊은 연구원 리처드 드루를 만났다. 맥나이트는 드루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고, 드루는 “자동차 도색작업을 할 때 쉽게 떨어질 수 있도록 뒷면에 주름이 잡힌 테이프를 만들어 보고 있다”고 답했다. 맥나이트는 드루에게 “부질없는 일이니 당장 중단하라”고 지시했지만, 드루는 이 지시를 어기고 실험을 계속해 효자상품 마스킹테이프를 개발했다. 그리고 마스킹테이프는 3M의 효자상품이 됐다.

이후 맥나이트는 ‘방치의 경영’ 철학을 갖게 됐다. 3M은 이런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15% 규칙’을 만들었다. 이 규칙은 전 직원이 업무시간의 15%에 해당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자신의 상사를 포함해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보고할 필요가 없다. 직원들을 나태하게 만들지 모른다고 우려할 수도 있었지만, 맥나이트는 이 원칙을 밀고 나갔다. 15% 규칙은 3M을 창의적인 기업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한국 정부와 규제기관, 한국 기업의 리더들은 통제 욕구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상대방을 지도하고 통제하는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제가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방치의 경영’이 더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도 있다. “당신들이 잘하고 있으니, 나는 방해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미래는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조언과 지원을 할지언정 노파심을 이겨내고 방해하지는 말자.

김용성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