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국 남자들의 행복 찾기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다란 창을 통해 떨어지는 햇살을 받으며 찻잔을 벗 삼아 얘기꽃을 피우는 여성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깔깔거리며 웃음꽃을 함빡 피우는 그들의 모습에서 가사노동이나 일상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25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 100세 이상 초고령자가 3159명으로 5년 전보다 72.2%나 급증했는데 여성이 2731명(86.5%)으로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친구들과 떠는 수다로 어찌 일상의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릴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이런 지표를 보면 여성들의 ‘수다’가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닌가보다.

이래도 참고 저래도 참으며 가슴속에 ‘화병(火病)’까지 안고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데 가부장적 가족문화 때문에 한국 여성에게만 독특하게 나타난다는 이 문화 관련 증후군 화병이 최근 남성에게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사회에서는 위계질서와 체면을 중시하는 상사로서 살아온 그들에게 가족보다는 일이 우선이었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춧돌이 돼준 그들은 이제 ‘왕따 아버지’에 ‘꼰대 아저씨’로 전락했다. 그러니 그들이 느끼는 엄청난 상실감과 허탈함이 화병까지 불러온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호젓한 호숫가나 동네 공원을 다정히 산책하는 유럽의 노부부 모습은 하얀 백발이 날리고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70, 80대에도 스키, 패러글라이딩, 서핑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고 거리에서 거리낌없이 스킨십하는 그들의 모습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이탈리아 남자들을 바람둥이라고 하지만 나이 들어도 변치 않는 솔직함과 열정이 부럽다. 나이가 든다고 가슴속의 열정마저 사그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반면 100세 시대를 운운하면서 50, 60대만 돼도 마치 뒷방 늙은이라도 된 것처럼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내가 이 나이에 뭐…”라고 하는 한국 남성들. 감정 표현하는 것을 인간적인 미성숙이라 여기며 살아온 그들에게 폭탄주 몇 잔 돌려 뇌가 적당히 마비돼야 비로소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상한 음주문화가 생긴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지 행복하게 사는 법을 몰랐던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아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온 날을 바꿀 순 없다. 하지만 오늘부터 시작하는 우리의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오늘 이 순간이 우리의 남은 인생을 시작하는 순간이니까. 가족을 위해 저버려야 했던 젊은 날의 꿈을 이제 다시 꿔보라.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우린 지금 가장 젊으니까. 노년의 사랑과 욕망을 주책과 노망으로 치부하는 이 세상에서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라. 사랑한다고.”

이소영 < 솔오페라 단장 rosa045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