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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할 수 없는 나라'로 빠져드는 대한민국

입력 2016-08-03 18:25:07 | 수정 2016-08-04 03:46:18 | 지면정보 2016-08-04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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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 정신으로 일으킨 경제
혁신은 규제에 막히고 국정은 표류
불통·불신 걷어낼 개혁 서둘러야

권혁세 < 법무법인 율촌 고문 / 전 금융감독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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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규제개혁 세미나에서 최진욱 고려대 교수는 “노동·기업·금융규제를 10% 정도 완화하면 성장률이 1.5%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저성장을 타개하기 위해 추경예산까지 매년 편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돈을 들이지 않고 성장률을 높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정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규제완화를 외쳤어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최근 경제를 옥죄는 규제 사례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의 핀테크산업 육성 방침에도 국내 핀테크 업체들은 몇 년 전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사건으로 강화된 개인정보보호 관련 규제로 국내에서 영업을 활성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국회는 규제완화에 굼뜬 자세를 보이고 있어 일부 업체는 해외에서 영업을 꾀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핀테크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을 개발한 업체가 늘고 있지만 규제나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으로 시행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특히 일부 공무원은 새로운 서비스가 국민편익을 높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해당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 주저하고 있다는 뒷얘기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는 단독 청사에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사했다. 금융위와 수시로 업무협의를 해온 금융감독원과 금융회사 직원들은 이사 후 금융위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지난번 정부종합청사의 보안이 뚫린 뒤 청사출입 통제를 청와대 수준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슨 사고가 날 때마다 임기응변식 규제와 통제를 되풀이해온 결과 규제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핵심규제는 늘고 있고 정부와 민간의 소통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며칠 전 한 부처는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정책을 발표했다. 문제는 국민 대부분이 정책의 실행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대야소’인 19대 국회 4년 내내 정부 정책의 상당수가 야당 반대로 시행되지 못했는데 하물며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만 믿고 투자나 사업을 준비해온 국민만 손해를 봤다.

대한민국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정신으로 경제기적을 이룬 나라다. 이런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할 수 없는 나라’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는 경제에 부정적인 뉴스가 넘쳐난다. 지난 수십년간 경제성장을 주도해온 대기업들은 총수의 비리수사와 경제민주화 명분 아래 양산되고 있는 규제입법으로 잔뜩 움츠려 있다.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국가안보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국론은 분열되고 있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

나라 전체가 국가이익보다 지역이기주의에 휘둘리고 내 탓보다 남의 탓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경제가 위축되고 국정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4차 산업혁명에서 보듯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주변환경은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 개혁과 혁신을 늦추면 순식간에 세계경제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며칠 전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이 경제에는 단기적인 위축을 주더라도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와 접대문화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란 취지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법 시행으로 당장 농어민이나 음식점이 입을 피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겨울왕국처럼 한국 사회 전반에 복지부동과 불통, 불신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다. ‘일단 시행해 보고 문제점이 있으면 보완하자’는 주장은 현 상황의 절박함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비치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도 문제가 예상된다면 철저히 보완해서 시행하는 것이 제대로 된 국가고 선진국이다.

권혁세 < 법무법인 율촌 고문 / 전 금융감독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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