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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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사진)은 지난달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된 뒤 정부의 저출산 대책 예산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름은 저출산 대책 예산인데 실질적인 내용은 출산 장려와 무관한 것이 적지 않았다. 나 의원은 “골목길 폐쇄회로TV(CCTV) 설치 예산까지 저출산 예산에 포함돼 있었다”며 “정부는 10년간 110조원을 투입했다고 하지만 알맹이 없는 정책이 많다”고 지적했다. 나 의원은 “새로운 정책을 내놓지 않고 기존 정책을 포장만 바꿔 집행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며 “모든 예산과 정책을 전면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저출산특위 위원장을 맡은 소감을 묻자 “당 대표보다 재미있고 중요하고 할 일도 많다”고 했다. 그는 8·9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 출마를 고민하다 불출마를 택했다. 그는 “초선 의원이던 17대 국회 때도 저출산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는데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내년부터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의욕을 보였다.

나 의원은 저출산 원인에 대해 “경제적 요인과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자리·주거 불안 등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도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이라며 “경제적인 면과 문화적인 면을 함께 감안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나 셋째 자녀부터 제공되는 출산 관련 혜택을 첫째 자녀부터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 의원은 “첫째를 낳아 키우면서 너무 힘들면 둘째를 낳지 않는다”며 “첫째부터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둘째를 낳는다”고 말했다.

전업주부 자녀의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제한한 ‘맞춤형 보육’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 의원은 “전업주부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지만 막상 전업주부들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한다”며 “기성세대 관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했다.

가족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 의원은 “프랑스는 신생아 50%가량이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다”며 “동거 관계도 부부와 똑같은 권리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각종 출산 장려책을 통해 1990년대 1.6명까지 떨어졌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을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높은 2.1명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이민정책도 달라져야 한다”며 “외국인이 와서 살고 싶어하는 나라가 돼야 하고 불법체류자 자녀들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오는 9일 전당대회와 관련, “계파 갈등을 청산하고 진정한 보수 가치를 실현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포용과 도전이라는 탈계파 모임을 결성했다”며 “계파를 넘어선 당 혁신 방안과 경제위기 해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선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유승호/박종필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