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어제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2013년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일명 ‘한국형 IB’)로 지정해 기업 신용공여를 허용한 지 3년 만에 내놓은 확장판이다. 금융위는 내년부터 자기자본 4조~8조원인 증권사에 발행어음 조달과 외국환업무 등을, 8조원 이상에는 종합투자계좌와 신탁업무 등을 허용키로 했다. 규모를 키울수록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10조원 이상의 초대형 IB를 탄생시켜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나 M&A를 지원케 한다는 복안이다.

초대형 IB 구상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시절부터 강조해온 ‘한국형 IB’ 구상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57개사가 난립해 여전히 수수료 경쟁이나 벌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청약증거금 32조원이 몰린 네이버 라인의 상장, 국내 홈플러스 매각 등에 국내 증권사는 한 곳도 끼지 못했다. 더구나 임기 1년짜리 ‘파리목숨’ CEO가 이끄는 증권사들은 야성을 실종한 지 오래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규제를 풀어 판을 새로 짜겠다는 취지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증권사 간 합병이 진행되고 있어 주마가편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뭔가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융당국이 금융허브니, 한국판 골드만삭스니 하는 화려한 청사진에다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다짐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IB가 없다는 것은 실제 달라진 게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지난해 취임 일성으로 규제 타파, 금융사의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현장의 불만은 여전하다. 시도때도없이 시달하는 창구지도, 모범규준, 가이드라인 등에 파묻혀 도대체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 알 길이 없다는 볼멘소리다.

장기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IB는 위험을 수반한 고도의 금융기법을 갖춰야만 명함을 내밀 수 있다. 덩치만 키운다고 될 게 아니다. 금융당국이 시시콜콜 간섭하는 한 핀테크든, IB든 금융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규제혁파 없이 거대담론을 또 꺼내든 것은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초대형 IB가 안 나오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