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류가 중류 되는 날
얼마 전 화장품업체 사람들을 만난 일이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모두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한 즈음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K뷰티 성공에 대한 얘기는 잠깐이었다. 주로 “K뷰티 신화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는 걱정으로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그들은 마케팅 전문가, 상품기획 담당자 등 핵심 인력이 중국으로 대거 유출되고 있다고 했다.

며칠간 취재를 거쳐 지난 1일자로 K뷰티 인재 유출을 다룬 ‘K뷰티 중국의 역습’이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반응도 예상외였다. ‘안타깝다’는 의견보다 ‘이럴 줄 알았다’는 냉소적 반응이 많았다. 인력 유출은 화장품 분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의견도 많았다. 실제 메이크업 아티스트, 방송 제작자 등 소프트산업 전반에서 인재 유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연출을 맡은 장태유 PD, ‘쌀집 아저씨’로 유명한 김영희 PD도 중국에 있다. 게임산업도 그렇다. 한 프로게이머는 한국에서 받던 연봉의 16배를 주겠다는 제안에 중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일부 네티즌은 이들을 중국으로 가게 한 원인으로 한국의 임금체계를 꼽았다. “능력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으니 중국으로 가는 것 아니냐”, “한국 회사에선 상품을 히트시켜도 별다른 보상이 없지만 중국에선 통 크게 보상해 준다” 등의 의견이었다. 중국에선 근로자 연봉이 비밀이라는 것을 취재를 통해 확인했다. 능력에 따라 임금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성과가 나면 확실하게 보상할 수 있다.

한국에선 옆자리 동료 연봉을 대부분 안다. 호봉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경직성이 핵심 인재를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고 말하면 무리일까.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동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에 해외로 향하는 인력을 막을 방법이 없다”며 “이대로 가다간 한국 노동시장은 레몬마켓(저급 재화만 유통되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류가 중류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이미 중국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여기에 문화적 힘까지 갖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이다.

이수빈 생활경제부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