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 요하닉스, 이탈리아서 지방시·발망과 경쟁"
한류와 K뷰티는 아시아를 휩쓸고 있다. 미국 등 더 큰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K패션은 여전히 국내에 머물러 있다. 일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브랜드를 제외하면 국내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이런 패션업계에 신진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5명의 신진 디자이너 스토리를 통해 K패션의 미래를 조망해본다.

2007년 서울 중곡동에 있는 가죽공장에서 한 청년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직원도 아니었다. “가죽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다”며 무작정 찾아왔다. 공장 직원들은 “귀찮다”며 내보내려 했다. 하지만 청년은 “허드렛일이라도 하겠다”며 바닥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화학약품과 가죽용 본드 냄새가 지하에 있는 공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3주간 묵묵히 허드렛일을 도왔다. 직원들도 마음을 열었다. 청년에게 가죽 처리를 시키기 시작했다. 3개월간 공장에서 가죽 처리법을 배운 그는 자기가 만들고 싶던 가죽 외투 등 옷 여섯 벌을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이 옷을 졸업 전시회에 내놓았다. 그해 영국 런던패션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패션 브랜드 ‘요하닉스’를 이끌고 있는 김태근 디자이너(35·사진) 얘기다.

요하닉스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전체 매출의 98%가 해외에서 나온다. 이 회사는 중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지금까지 영국, 프랑스, 아랍에미리트 등 세계 42개 국가에 진출했다. 이탈리아의 패션 편집숍에서는 알렉산더 맥퀸이나 지방시, 발망과 함께 전시되는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한화갤러리아 편집숍 GDS에 입점했다. 지난 2월에는 세계적인 패션행사 화이트 쇼에 초대받으면서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두오모대성당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국내 브랜드 중 처음이었다.

김 디자이너는 원래 산업디자이너를 꿈꾸던 미대생이었다. 취미는 옷 리폼. 그는 “고등학교 때도 교복 상의에 달린 단추를 가열해 에나멜 코팅을 떼어내 금 단추처럼 바꾸고 바지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단순한 취미였다.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없었다. 2001년 제일모직 옷을 납품하는 방위산업체에서 군 복무를 한 것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이곳에서 자신이 패션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남성 코트를 만들면서 재밌다고 느꼈다”고 했다. 전역 후 영국 런던패션스쿨에 지원했다. 합격 통지를 받은 그는 2005년 런던으로 향했다.

패션스쿨에서도 독특했다. 수업시간에 과제로 만든 의상을 그냥 버려두지 않았다. 하루는 런던 브로드비 거리에 있는 한 편집숍에 옷을 가져가 400파운드(약 58만원)에 팔고 싶다고 제안했다. 가게 주인은 일단 옷을 걸어놓겠다고 했다. 그는 “신기하게도 옷이 팔렸다”며 “그 뒤 1주일에 바지 한 벌씩을 손으로 만들어 그 편집숍에서 팔았다”고 말했다.

2006년 이 편집숍을 방문한 일본의 디자이너 미치코 코시노가 그의 옷을 마음에 들어했다. 곧 패션그룹 미치코 코시노에 영입됐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다. 2007년 한국의 가죽공방에 찾아갔을 때도 미치코 코시노 소속이었다. 그는 “당시 가죽 일을 배우고 싶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휴직했다”고 했다.

2008년에는 발망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를 그만둔 뒤론 티셔츠를 제작해 리버아일랜드, H&M 등 브랜드에 납품해 독립할 자금을 마련했다.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출시한 게 지금의 요하닉스다. 김 디자이너는 “한국 패션은 세계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국산 브랜드가 수입 브랜드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지만 세계에 나가면 한국 브랜드도 수입 브랜드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 한국 브랜드를 고급으로 쳐준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 나가면 한류 열풍이 확실히 느껴진다”며 “중국에서는 한국 아이돌이 요하닉스 옷을 입은 사진을 가져가 ‘이 사진에 있는 옷을 다 달라’고 주문하는 소비자도 많다”고 전했다.

김 디자이너는 오는 9월8일 미국 뉴욕패션위크에서 선보일 2017 봄·여름 시즌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다. 요하닉스를 한국에서 나온 명품 브랜드로 키우는 게 그의 목표다. 품질은 물론이고 예술성과 역사를 갖춰야 명품 대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