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스포츠개발원 제공
사진=한국스포츠개발원 제공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양궁 대표팀은 출국 전 수개월 동안 실전연습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금쪽같은 훈련 시간이지만 실전연습과 뇌파훈련에 절반씩 배정하는 이른바 ‘반반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뉴로피드백’이라고 불리는 훈련법은 뇌파 치료 기술을 이용, 뇌의 전기적 활동과 심장 및 근육의 움직임 등 다양한 생체 반응을 측정하고 분석해 현장의 긴장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과학적 심리훈련의 일종이다.

뇌파훈련 받는 ‘女양궁 스타’ 기보배
뇌파훈련 받는 ‘女양궁 스타’ 기보배
여자양궁 간판스타 기보배는 “가보지 않은 경기장이지만 뇌파훈련으로 간접 체험이 가능한 데다 어떤 상황에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어떤 실수를 했을 때 근육이 위축되는지 등을 그래프로 확인하면서 훈련할 수 있어 심리적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과학훈련을 진두지휘한 곳이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KISS)이다. 전신인 체육과학연구원 시절에도 경기 상황에 과학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훈련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해 석·박사급 30여명으로 구성된 스포츠과학실을 별도로 신설해 본격적인 메달 지원에 나선 건 리우올림픽이 처음이다.

‘리우 골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한국스포츠개발원은 양궁 사격 유도 펜싱 태권도 레슬링 체조 등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중점 종목’과 메달 획득이 가능한 ‘전략 종목’(배드민턴 탁구 하키 역도 요트)을 집중 지원했다.

밀착지원팀도 붙였다. 담당연구원만 종목당 최대 7~8명 수준으로 기존 2~3인 수준의 연구원을 배정하던 것에서 규모부터 달라졌다. 석·박사급 연구원은 물론 통계 및 데이터 분석가와 영상 전문가가 추가로 포함된 만큼 질적 수준도 좋아졌다.

하키 대표팀 훈련엔 위치확인시스템(GPS) 기술이 접목됐다. 선수들은 목 뒷부분에 시스템 장비를 부착하고 실전훈련을 한 뒤 선수별 이동 거리와 주요 동선, 활동량과 심박수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상대 전술에 맞는 포지션 변형과 선수 교체 등 팀 전술 운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과학적 훈련의 결실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여자하키 대표팀은 2013년 세계 최강들이 참가하는 월드리그에서 3위에 올랐고 2014년엔 16년 만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5년 월드리그에선 준우승을 차지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여자하키팀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경기 패턴을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배드민턴에는 특수 카메라까지 동원했다. 초당 7만컷을 촬영할 수 있는 초고속 카메라다. 메달 전략 종목 중 하나인 배드민턴은 3000회에 육박하는 각종 국제대회 경기 데이터를 통해 상대 선수의 기본 패턴을 사전에 간파하는 훈련을 했다. 경쟁 상대의 서브와 리시브, 스매싱 등 셔틀콕의 낙하지점에 값을 매긴 뒤 수집된 빅데이터를 분석해 그 선수의 패턴을 미리 몸에 익히는 방식이다.

시속 200㎞로 날아가는 배드민턴 셔틀콕의 순간 움직임까지 잡아낼 수 있는 특수 카메라는 팔 다리 몸통 등 부위별 움직임과 각도 등을 기반으로 최상의 동작과 자세를 구현해 점수를 높이는 체조 선수들의 훈련에도 적극 활용됐다.

구기 종목엔 군용 기술이 활용됐다. 군용 전투장비에서 착안한 ‘트랙맨’이란 측정기는 탄도 미사일을 추적하는 시스템의 원리에 따라 힘이 가해진 공의 회전과 속도, 높이, 각도, 궤적 등을 추적해 비거리 등을 분석한 결과를 산출한다. 올림픽 첫 진입 종목이자 최초 금메달을 노리는 골프 대표팀과 구기 종목 선수들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이 스포츠과학 훈련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한 장비 액수만 8억여원. 올림픽 개막을 사흘 앞둔 브라질 리우엔 총 10여명의 석·박사급 지원 스태프가 선수들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며 현지 적응훈련에 힘을 보태고 있다.

문제헌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는 “국내 스포츠과학 기술은 세계 상위 10%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스포츠과학만으로 없는 메달을 만들어내진 못하지만 선수의 실력과 노력 99%에 부족한 1%를 더해 메달의 색깔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