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잘 연출된 '이미지 쇼' 보여준 미국 전당대회
지난달 18일부터 11일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각각 열린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를 참관했다. 양당의 최대 정치행사를 통해 미국인들은 어떻게 소통하고, 선거 전략을 만들어 가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 전당대회는 한마디로 잘 연출된 ‘쇼(show) 정치’의 정수였다. 공화당이 개인 브랜드를 앞세우는 트럼프의 원맨쇼였다면 민주당은 거물들이 대거 출동하는 마담 프레지던트를 위한 버라이어티쇼였다. 독일의 대중 선동가이자 정치인인 아돌프 히틀러는 “대중은 타성에 젖기 쉽다. 그들에게 사물을 인식시키는 일은 간단한 생각을 수천 번이고 반복적으로 기억시키는 것이다”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는 전당대회를 통해 앞으로 수백, 수천 번 반복해야 할 이미지·정책 인식 작업의 시작을 알렸다.

미 전당대회의 백미는 각 당 후보의 수락 연설이다. 이를 통해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면서 정교한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한다. 클린턴과 트럼프는 목적은 같았지만 방법은 달랐다.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메시지는 강한 리더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국이라는 대가족의 ‘아버지‘가 되겠다는 리더십으로 당의 화합을 강조했다. 메시지는 “나는 내 가족을 지킬 것이다. 나만 믿어라”였다.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대통령 후보 클린턴은 노련한 할머니, 엄마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끌어안는 리더십 스타일이었다. 끝까지 경쟁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자들을 끌어안기 위해, 흔들리는 미국인들을 끌어안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와 ‘함께’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평소와 달리 과한 몸짓과 표정을 자제한 연설을 했다. 과격한 개인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해 자신과 이미지가 대별되는 가족을 전면에 내세웠다. 클린턴은 ‘여성 후보’라는 타이틀이 주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 주요 정치인을 대거 출동시켰다. 복장도 눈에 띄었다.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색깔의 옷으로 요일마다 바꿔 입었다. 후보 수락 연설 땐 순백 정장을 입어 푸른빛 무대 앞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메시지는 단호했다. 트럼프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강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대니얼 부어스틴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우리는 남을 만족시키는 개성을 원한다. 그 개성이 우리 자신의 이미지, 혹은 우리 행동의 이미지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를 원한다. 대통령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대중적 이미지 향상에 더 관심을 쏟는다”고 말했다. 클린턴과 트럼프 역시 각자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미국 정치는 한국과 다르다. 한국엔 전당대회라는 전국적인 관심을 집중시키는 정치행사가 없다. 미국인들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어느 때보다 잘 연결돼 있는 세상에서 굳이 전당대회라는 200년 넘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 화합하고, 당의 차기 주자를 만들고, 대선 후보에 힘을 실어준다. 올해 미 대선은 양당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다고 한다.

어느 때보다 흑색선전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전당대회는 남은 100일간의 대선 레이스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임을 보여주는 예고편이었다.

허은아 <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