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러스트 벨트(Rust Belt)
드넓은 미국에는 지구상의 모든 지형이 다 있는 것 같다. 만년설(로키산맥)부터 협곡(그랜드캐니언), 사막(데스밸리), 늪지(플로리다)…. 판이한 자연조건에 경제·문화적 특성이 더해져 독특한 지역색이 형성된 게 미국이다.

진작부터 미국 언론은 비슷비슷한 지역끼리 벨트(belt)로 묶는 것을 선호했다. 특정 벨트는 정치성향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코튼벨트와 밀벨트란 용어가 사용됐다. 코튼벨트는 남부 면화(cotton) 산지, 밀벨트는 중부 밀(wheat) 산지의 주(州)들을 가리킨다.

그 위로는 방대한 콘벨트가 펼쳐진다. 동서로 오하이오에서 네브래스카, 남북으론 미주리에서 미네소타까지 세계 최대 옥수수(corn) 산지다. 이와 밀접한 것이 축산 지대인 소고기(beef)벨트다. 몬태나부터 텍사스까지 세로로 더 폭넓게 이어져 있다. 비프벨트는 사람보다 가축이 더 많은 주들이 적지 않아 주마다 의원이 2명뿐인 상원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종교·기후에 따른 지대도 있다. 성경(bible)벨트는 복음주의가 강한 남부 주들을 가리킨다. 한때 진화론 교육마저 금지했던 주가 있었을 만큼 보수적이다. 요즘 각광받는 것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북위 37도 이남지역을 통칭하는 선(sun)벨트다. 춥고 눈이 많은 북부 스노(snow)벨트에 대칭된다.

선벨트는 1970년대까지도 낙후된 농업지대였다. 그러나 온화한 기후, 저렴한 노동력, 파격적인 세제 등으로 기업을 유치해 지금은 미국 인구의 40% 이상이 거주한다. 북부 아이비리그 출신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대 정서도 강하다. 지난 50년간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를 제외하곤 모두 선벨트 출신이었다.

결전을 100일 앞둔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주말 첫 유세지로 똑같이 러스트(rust)벨트를 찾았다고 한다. 러스트벨트는 북동부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다. 본래는 1870년대 이후 100년간 미국 산업을 주도해 공장(factory)벨트로 불렸다. 철도·운하망으로 석탄 철광석 등의 공급이 원활했고 유럽 이민자들로 노동력도 풍부한 덕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고비용 구조와 제조업 쇠퇴로 인구가 줄고 범죄율이 치솟아 골칫거리가 됐다. 그래도 최근엔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산업이 살아나고, 산학 협력 속에 바이오테크, 나노테크, 3D, 폴리머 등 신산업도 일어나고 있다.

러스트벨트는 대선 때마다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스윙스테이트(경합주)인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주 등이 포함돼 있어서다. 이번엔 누구 손을 들어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