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종로 포목점서 시작한 두산, 새로운 100년에 도전한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인 두산그룹이 8월1일 창립 120주년을 맞는다. 120년간 그룹의 본업을 바꾸는 변신도 있었고 위기와 고비도 많았다. 그럼에도 기업을 지탱하고 한국 산업계의 큰 자리를 차지하게 한 힘은 변화를 무서워하지 않은 ‘도전 정신’이었다. 두산은 창립 12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가장 젊은 기업으로서 또 다른 100년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1896년 면포 상점에서 출발

120년 전 종로 포목점서 시작한 두산, 새로운 100년에 도전한다
두산그룹의 시초는 1896년 서울 종로4가 배오개에서 창업한 ‘박승직상점’이다. 경기 광주 출신 보부상이었던 고(故)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1864~1950)는 면포를 주로 취급하는 근대식 상점을 열었다. 1915년 부인의 건의로 제조한 최초의 근대 화장품 ‘박가분’은 당시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상점은 1946년 박승직의 아들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1910~1973)이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상호를 ‘두산(斗山)상회’로 바꿨다. 박승직은 박두병 회장의 이름 가운데 자에 뫼 ‘산(山)’자를 붙여 ‘두산’이라는 상호를 지어줬다. 이는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였다.

박두병 회장 아래 두산상회는 1950년대 무역업과 오비맥주, 1960년대 건설, 식음료, 기계산업, 언론, 문화 등 다양한 사업에 진출했다. 1980년대 맥주, 건설, 전자, 유리, 기계, 무역 부문을 중심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그러나 1990년대 페놀 사건(두산전자의 페놀 유출)으로 주력인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이 급락하고 부채비율이 600%를 넘으면서 그룹이 위기를 맞기도 했다.

소비재에서 인프라기업으로 변신

1990년대 초 두산은 주류 시장의 70%, 청량음료 시장의 48%를 차지했다. 하지만 1996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선제적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당시 국내 기업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1997년 코카콜라를, 1998년엔 오비맥주를 파는 등 13개 주력사업을 매각했으며 유제품, 자판기 등 12개 사업에서 철수했다. 1995년 688%에 달한 두산그룹 부채비율은 2000년 149%까지 떨어졌다.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됐지만 외형이 크게 감소해 다시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기 시작했다. 2000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으로 매물로 나온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한 것은 두산그룹엔 ‘천재일우’였다. 국내 최고 소비재기업이었던 두산그룹이 발전, 건설기계, 담수 등 인프라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두산그룹은 2003년 고려산업개발,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2007년 미국 밥캣 등 인프라 관련 기업을 차례로 인수했다.

연료전지·면세점 새 동력으로

소비재에서 인프라, 내수에서 글로벌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다시 위기가 왔지만 이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 3조4000억원이던 매출이 10년 뒤 23조원으로 급성장했고 해외 매출 비중이 1998년 12%에서 2015년 64%로 높아졌다. 2008년 닥친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매출이 작년 19조원으로 줄었지만 2014년부터 2년에 걸친 두 번째 선제적 구조조정도 최근 마무리했다.

두산그룹은 세계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2014년 KFC를 시작으로 올해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 두산DST, 두산건설 HRSG 사업 등을 잇따라 매각해 현금 3조원을 확보했다. 2014년 연료전지사업에 새로 진출했으며 지난해 면세점사업권을 따내 관련 투자도 늘리고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밥캣이 연내 상장을 마무리하면 지난해 말 11조원 규모였던 차입금이 연말까지 8조원대로 대폭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