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그룹 회장)이 내년 2월 임기를 끝으로 더 이상 회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바통’을 넘겨줄 후보도 있다고 했다. 다만 재계에선 마땅한 차기 전경련 회장 후보를 찾긴 쉽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여전히 안갯속이다.
다음 전경련 회장은 누구?
◆연임의지 없는 허창수 회장

허 회장은 지난 28일 강원 평창에서 열린 전경련 최고경영자(CEO) 하계포럼에서 “이제 할 만큼 했다”며 “(전경련 회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그동안 차기 회장을 뽑을 때 마땅한 후보자가 없으면 연장자 우선 원칙을 적용해왔다. 이번엔 그 원칙이 적용되기 쉽지 않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전경련 회장단 중 최연장자는 1938년생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이다. 정 회장은 그동안 계속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해 왔다. 이 회장도 ‘70대 회장 불가론’을 주장했던 터라 손사래 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주요 기업 회장도 마찬가지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병석에 누워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전경련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해 출소해 그룹 경영을 다시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서기 어려운 분위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진해운 자금난 등으로 바깥 일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재계에선 차기 회장으로 김승연 회장이 나설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김 회장이 집행유예 상태지만, 이번에 8·15 특별사면을 받으면 후보로 나서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구자열 회장 이름도 오르내린다.

◆서로 고사하는 전경련 회장 자리

전경련 회장은 한때 ‘재계의 수장’으로 불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1999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그룹 해체와 함께 물러난 뒤 2000년대 들어 전경련 회장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한 대기업 임원은 “2000년대 들어 전경련 회장 자리를 꺼리기 시작하면서 서로 ‘폭탄 돌리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가 됐다”고 전했다.

2003년 10월 손길승 SK 회장이 물러나면서 후임으로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 연장자 우선 원칙에 따라 전경련 회장에 올랐다. 이후 강 회장은 연임을 고사하고 2005년 초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경련 회장단은 당시 승지원까지 찾아가 이건희 회장에게 차기 회장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지만, 이 회장은 거듭 고사했다. 어쩔 수 없이 강 회장은 연임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2007년 3월 전경련 회장에 오르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회장단이 조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앉히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준용 회장이 느닷없이 ‘70세 불가론’을 외쳐 사상 초유의 내분 사태까지 겪었다. 이후 가까스로 조 회장을 설득한 끝에 수락을 받아냈다.

2010년 7월 조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돌연 사의를 나타내면서 전경련은 또 한 번 ‘회장님 찾기’에 나섰다. 허창수 회장은 2011년 2월 수차례 고사 끝에 떠밀리다시피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이후 두 차례 연임했다. 전경련 회장단은 허 회장과 이승철 상근부회장을 포함해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평창= 김순신/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