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신보호무역주의] 쪼그라든 세계 교역…15개월째 정체
세계 교역량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신(新)보호무역주의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영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27일 사이먼 이베넷 스위스 세인트갈렌대 교수 등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세계 교역량이 증가세를 멈추고 정체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교역량이 15개월 연속 정체된 것은 베를린 장벽 붕괴(1989년)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교역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조금씩이라도 증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연구진은 “전문가들은 그동안 교역량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경고했으나 현재 상황은 증가세가 둔화한 게 아니라 아예 증가를 멈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자재 가격 약세나 달러 강세만으로는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며 “최근 1년 사이 세계 각국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진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국회 경제재정연구포럼 초청 강연에서 “자국 경제 회복을 위한 보호무역주의 회귀 움직임으로 글로벌 교역 위축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국가 간 경쟁적인 자국 통화 약세 유도 움직임도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주 중국 청두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주요 의제였다. 회원국들은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를 배격한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하지만 겉으로만 보호무역주의 경계를 합창할 뿐 속으로는 ‘각자도생’ 움직임이 뚜렷하다는 게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스텔스 보호무역(stealth protectionism)’ ‘바이 내셔널(buy national)’ 등 보호무역주의와 관련한 신조어도 등장했다. 스텔스 보호무역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관세장벽이 많아지고 있는 걸 뜻한다. 바이 내셔널은 정부 조달 부문을 중심으로 자국산 제품을 쓰거나, 인프라 건설 때 자국산 원자재와 인력을 쓰도록 규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