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이 자유 사회를 지향한다면
한국은 진정 자유 사회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는가. 최근 이슈가 된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자. 먼저 시장경제에 대해서다. 시장경제는 다양한 가치를 가진 개인들이 모여 형성된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를 통해 협동하는 체제를 일컫는다. 하이에크는 이를 특정 목적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적을 친구로 만든다는 뜻’을 가진 카탈락시(catallaxy)라고 부르기를 선호했지만, 편의상 이를 시장경제라고 부른다면 여기에는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포용적 시장경제’라는 용어는 시장경제에 불필요한 덧칠을 함으로써 그 본래적 의미를 훼손한다.

시장경제에 포용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본래적 의미의 시장경제는 뭔가 배타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뜻을 은연중에 나타냄으로써 시장경제를 부정적인 의미로 각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시장경제에 ‘포용적’이나 ‘따뜻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부정해야 그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다.

시장경제를 적대시하는 정서가 만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씨·부족 사회의 소규모 사회에서 형성된 인식으로 현대와 같은 대규모 사회의 운행 질서를 인식하는 데 애로를 겪기 때문이다. 즉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점을 인식하지만, 두 사회에서의 협동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정서적으로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가 배타적이거나 비인간적이어서가 아니다.

‘천민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한 방식으로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대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지식이나 소양 등이 동질적이 아니므로 특정 사안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정통한 사람들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결과가 나오는 일도 민주주의에서는 흔히 발생한다. 대중이 단기적으로 무능하고 오류를 범하기 때문인데, 이는 대중 민주주의의 한계나 문제점으로 지적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점을 들어 대중 민주주의를 천민 민주주의로 비하하는 것은 자유 사회를 지향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가져야 할 개념이나 정서가 아니다. 천민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계나 문제점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의식 등 또 다른 갈등을 부추겨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을 뿐이다.

지금 세계 경제가 불황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의 오류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돈 풀기로 빚어진 소비와 공급 구조 간의 어긋남을 바로잡아 경제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리는 것은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인데, 재정의 확대 투입과 돈 풀기로 그 어긋남이 고쳐지지 않고 온존하거나 더욱 심화되고 있다. 재정 확대와 돈 풀기를 불황에 대한 처방으로 주장하는 이들이라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를 신뢰하는 학자라면 이를 중단하고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에 맡기라고 주장해야 한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도 자유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주장할 바가 아니다. 다른 학문과는 달리 역사학에서는 ‘개념(conception)’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머지 부분은 역사학자의 특정한 ‘이해(understanding)’에 바탕을 둔 해석에 의존하게 된다. 이해는 의당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자유 사회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이의 형성과 유지, 발전에 관한 철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사안에 대해 일관된 주장을 해야 한다. 그들은 그런 철학과 사상을 주장하는 집단의 크기가 비록 소규모에 머무는 한이 있더라도, 이는 한국이 자유 사회와 시장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 골격이라는 점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 흔들리는 개인이나 집단은 자칫 정치적 노리개로 전락할 수 있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