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소파 방정환
“어린이는 복되다!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복을 준다고 믿어왔다. 그 복을 많이 가져온 이가 어린이다. ”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24년 잡지 ‘신여성’에 쓴 ‘어린이 찬미’의 일부다. 그는 사회활동의 대부분을 어린이를 위해 바친 ‘어린이의 영원한 동무’였다.

방정환은 1899년 11월9일 서울 종로구 당주동에서 태어났다. 미동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선린학교(현 선린인터넷고)에 들어갔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그만뒀다. 1917년 독립운동가 손병희의 딸 손용화와 결혼했다.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에 입학한 이듬해인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 체포돼 고문을 받기도 했다. 1920년 일본 도요대 철학과에 입학해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면서 본격적으로 어린이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해 소년운동에 나섰다. 1922년에는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하고, 1923년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이후 ‘세계아동예술전람회’ ‘구연동화회’를 여는 등 아동문학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과로와 비만 등으로 건강이 나빠진 방정환은 1931년 7월23일 구연동화 활동 중에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