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경제가 수직낙하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노골적인 권력 강화 행보에 투자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으면서다. 주가와 채권값, 통화 가치가 모두 하락세를 보였고 국가신용등급은 떨어졌다. 터키 중앙은행이 무제한 자금 공급 의지를 밝히며 ‘쿠데타 후폭풍’을 잠재우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오히려 정국 불안이 증폭됐다. 글로벌 자금의 ‘터키 엑소더스(대탈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르도안 리스크"…투자자들 '터키 엑소더스'
◆“외국자금 유출 배제 못해”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일(현지시간) 터키(국채)의 국가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정크 본드)인 ‘BB+’에서 ‘BB’로 한 계단 더 떨어뜨렸다.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춰 추가 강등 가능성을 예고했다. ‘BB-’까지 주저앉으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등급과 같아진다.

S&P와 더불어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가운데 하나인 무디스도 지난 18일 터키의 신용등급을 정크본드 바로 위인 ‘Baa3’에서 하향 조정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터키 통화인 리라화는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15일 달러당 3.0157리라에서 21일 한때 3.094리라까지 밀렸다. 리라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려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리라화 가치가 급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3개월 안에 달러당 3.1리라까지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지 이틀 만이다.

주가는 연일 하락세다. 쿠데타 발생 당일인 15일 83,825.36으로 장을 마친 터키이스탄불100지수는 72,112.38(21일 오후 3시50분)까지 14% 곤두박질쳤다. 쿠데타 발생 이후 첫 거래일에는 7.1%가 빠져 최근 3년래 최대 하락폭을 보였다. 터키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쿠데타 시도 이전보다 1%포인트 오른(가격 급락) 연 9.89%까치 치솟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180억달러짜리 시장에서 떠나지 말아 달라는 터키 정부 호소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설득되지 않았다”며 “자금 유출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고 전망했다.

◆에르도안 권력욕이 경제 추락 배경

전문가들은 터키 경제 추락 배경을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욕에서 찾고 있다. 그는 쿠데타 진압에 동원한 경찰들까지 해임할 만큼 무차별적인 숙청을 자행하고 있다. 이미 6만명의 군인과 판·검사, 공무원, 교수들이 체포되거나 해임됐다.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했으니 의회 눈치볼 필요 없이 정적들을 제거할 수 있게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다수가 체포됐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공언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체포되거나 해임될지 모르는 ‘공포정치’를 선포한 셈이다. FT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의 힘을 더욱 확대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은 긴장감이 높아지고 경제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 성장을 위해 추진한 유럽연합(EU) 가입에 대해서도 시큰둥해졌다. 그는 “터키가 지난 50년간 EU 가입을 노크해 왔지만 다른 나라들은 받아주면서 우리에게는 기다리라고만 한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터키가 사형제를 다시 도입하면 EU 가입은 없을 것”이라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경고하자 “EU는 세계가 아니라 28개 나라일 뿐”이라고 응수했다.

EU 요구에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터키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마이 웨이’를 걷겠다고 하면 터키의 시장경제 질서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외신들 관측이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