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문화재단의 ‘크리에이티브마인즈’를 통해 탄생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CJ문화재단의 ‘크리에이티브마인즈’를 통해 탄생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조재민 씨(35)는 2013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뒤 하루하루를 막막하게 보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수많은 영화사 문을 두드렸지만 그의 시나리오를 사겠다는 곳은 없었다. 그러던 중 CJ문화재단의 신인 스토리텔러 지원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S’를 알게 됐다. 졸업 작품으로 쓴 시나리오가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날것’에 가깝던 그의 시나리오는 보석처럼 연마되기 시작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도희야’를 제작한 김지연 프로듀서가 그의 멘토가 됐다. 영화계의 다양한 이들을 소개받아 인맥을 쌓았다. 일반인과 영화 전공 대학생, 전문가로 구성된 3단계 모니터링도 받았다. 그제야 자신의 시나리오가 영화사에서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감’이 왔다. 멘토링과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발전시켜 나갔다. 1500만원의 창작 지원금도 받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그의 영화 ‘눈발’(명필름영화학교 제작, 리틀빅픽쳐스 배급)은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 오는 11월 정식 개봉한다. 조 감독은 “영화인을 꿈꾸는 젊은 창작자 중에는 4~5년 동안 시나리오 작업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며 “멘토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문화재단이 ‘아트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재단마다 특화된 전문성과 기획력을 살려 신진 창작자들을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발굴·양성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 문화예술계에 ‘새 피’를 공급하고 있다. CJ문화재단의 ‘프로젝트 S’(영화) ‘크리에이티브마인즈’(뮤지컬 연극) ‘튠업’(인디음악), 두산연강재단의 ‘창작자육성프로그램’(공연), 삼성문화재단의 ‘아트스펙트럼’전이 대표적이다.

CJ문화재단은 신진 창작자들의 작품 기획·제작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작품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연결해 준다. 프로젝트 S에 선정된 예술가들은 ‘S-피치’라는 과정을 통해 영화 제작·배급사 관계자 앞에서 작품을 소개할 기회를 얻는다. 소개된 작품의 절반 정도가 그 자리에서 계약으로 이어진다. CJ문화재단 관계자는 “영화뿐 아니라 공연,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CJ가 가진 전문 인력과 노하우를 활용해 젊은 창작자들이 안전하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우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산연강재단은 연극 무용 뮤지컬 등에서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도전을 하는 젊은 창작자를 발굴해 3~5년간 장기적으로 지원한다.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와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선정된 예술가에게는 작품 개발부터 기획, 제작, 홍보, 마케팅까지 지원한다. 소리꾼 이자람, 극작·연출가 성기웅, 무대예술가 여신동, 극작가 김은성, 드럼 아티스트 양태석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신작을 무대에 올렸다.

두산아트센터는 이들의 실험적인 도전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거대한 실험실’ 역할을 한다. 쇼케이스, 낭독회, 워크숍 등을 통해 작품의 가능성을 검증, 보완하는 과정을 거친다. 소리꾼 이자람은 “예술가의 실험 그 자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라며 “공연의 성패가 아니라 작업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고 말했다.

‘아트스펙트럼’전은 한국 미술계의 신인 등용문이다. 만 45세 이하 젊은 한국 작가 10명을 선정해 공동 전시를 하고, 작가상을 탄 사람에게는 개인전도 열어준다. 젊은 예술가들이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기회도 제공한다. 삼성문화재단의 ‘파리국제예술공동체 입주작가 지원 사업’에 선정된 작가는 1년간 파리에서 작업하며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각국 작가들과 교류하고, 현지에서 전시회도 연다. 두산연강재단의 ‘두산 레지던시 뉴욕’은 젊은 작가들에게 6개월 동안 뉴욕 첼시에 있는 독립된 작업실과 아파트를 지원한다. 현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현지 전문가 및 미술 애호가와 교류할 기회를 준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