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View & Point] 여러 사람 '인지적 다양성' 활용, 창조적 해법은 '협업'서 나온다
개인 연구자가 아닌 연구팀이 노벨상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13년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는 힉스 입자로 알려진 물질을 예측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으로 받았다. 이 연구는 수많은 연구자가 협업으로 이룬 성과다. 하지만 수상자는 3명 이하여야 한다는 노벨상 규정 때문에 팀 대표가 수상했다.

노벨상이 제정됐던 115년 전과 달리 현대의 과학 연구는 여러 전문가가 팀을 이뤄 협업으로 한다. 노벨화학상의 경우 1901년부터 1910년까지는 매번 단독 연구자가 상을 탔다. 반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는 열 번 중 일곱 번은 협업으로 연구한 팀이 수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사설을 통해 노벨상의 현행 규정이 협업이 강조되는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한 팀이나 기관의 업적을 치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사회에서 협업은 필수적인 업무 조건이 됐다.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전문성을 가진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경영상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나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 개발 과정에서도 협업이 중요해지고 있다.

GE헬스케어에서 일하는 더그 디츠는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개발로 산업디자인 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장비가 잘 운영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가 일곱 살 여자아이가 MRI 장치를 보고 겁에 질려 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디츠는 그 순간 수년 동안 의료기기 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들이 이를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디츠는 아이들이 MRI 장치를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검사를 받도록 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박물관과 아동병원에서 일하는 아동전문가들은 물론 간호사, 기술자, 방사선 전문의, 지역 어린이집 원장, GE 엔지니어링 디자이너와 생산자 등을 모아 의견을 들었다. 아이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캠프에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켓을 타거나 탐험을 해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서 협업을 한 덕분에 그는 어드벤처 시리즈라는 장비를 만들 수 있었다. 이 협업 팀은 MRI 스캐너 표면에 화려한 그림을 입혀 우주나 정글로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들게 했다. 내부 장식도 아이들이 좋아하게 꾸미고 아동 음악이 나오게 해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환경을 만들었다. 검사를 받기 전 아이들은 캠프생활에 대한 만화책이 들어있는 배낭을 받고 간호사가 아니라 ‘캠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다.

디츠는 MRI 검사과정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총 9개의 주제로 구성했다. 그 결과 종전의 MRI 스캐너로 검사를 받는 어린아이 중 80%가 진정제나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새로 디자인한 어드벤처 시리즈 스캐너를 이용한 아이 대부분은 진정제를 맞지 않아도 됐다. 환자 만족도는 90%, 효율은 70% 증가했다. 협업을 통해 개발한 장비 덕분에 환자인 아이, 부모, 의료전문가 모두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됐다. 협력의 위력은 이처럼 대단하다.

창조혁신가들은 창조 과정에 다양한 관점을 불어넣기 위해 협력을 도모한다. 생각하는 방식, 현상을 보는 관점, 과제를 처리하는 방법, 전문지식과 경험 등이 제각각인 여러 사람이 모여 인지적 다양성을 활용하면 획기적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흔히들 다양성이라고 하면 인종, 민족, 나이, 성별, 사회경제적 지위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인지적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인지적 다양성은 상황을 해석하고 정보를 분류하며 가능한 모든 해법을 구상하는 방식 등 생각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문제들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모든 정보를 한 개인이 섭렵할 수도 없다.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의 인지적 다양성을 활용한 협력을 도모해야 창조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이혜숙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