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청정기·에어컨 항균필터서 독성물질"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당수 공기청정기와 차량용 에어컨의 항균필터에서 독성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이 방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OIT는 가습기 살균제 독성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비슷한 물질이다. 그동안 항균필터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관리 대상 품목에서 제외돼 있었다. 정부의 독성 물질 관리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어컨·공기청정기 필터 회수

환경부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공기청정기 3종, 차량용 에어컨 2종에 설치된 항균필터에 대해 위해성을 실험한 결과 제품 사용 과정에서 OIT가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나 해당 제품 회수를 권고하기로 했다고 20일 발표했다. OIT는 애경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간 CMIT 계열의 성분이다. 먹거나 피부에 닿으면 유해하며, 어류 등 수생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물질이다.

환경부 실험 결과 5일간 가동한 공기청정기 필터에서는 OIT가 25~46%, 8시간 사용한 차량용 에어컨 내 필터에서는 OIT가 26~76% 방출됐다. 공기 중 OIT 농도는 0.0004~0.0011㎎/㎥로 미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OIT 항균필터를 사용한 LG전자 코웨이 등 6개 기업의 공기청정기 58개 모델, 현대모비스 등 2개 기업의 차량용 에어컨 3개 모델, 삼성전자 등 2개 기업의 가정용 에어컨 27개 모델에 부착된 항균필터를 전량 회수 권고하기로 했다.

업체들은 문제가 있는 제품을 OIT가 포함되지 않은 필터로 무상 교환해주겠다고 밝혔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예민해진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위니아 측은 “문제가 있는 항균필터를 바꿔주거나 소비자가 원할 경우 항균필터를 사용하지 않는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이미 해당 제품을 OIT가 포함되지 않은 필터로 무상 교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허술한 관리 체계

미세먼지 논란으로 인기를 끌었던 공기청정기의 안전성 문제가 뒤늦게 대두된 것은 항균필터 제품이 사실상 정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는 전기용품 안전관리법에 의해 산업부 기술표준원의 관리를 받지만 필터는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다. 환경부 역시 필터 관리는 따로 하지 않았다. 공기 필터는 공산품으로 지정돼 있어 유독물질 표시 의무에서도 제외돼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OIT 흡입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아직 누구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안전기준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산업부와 환경부는 이번 문제에 대한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항균필터는 공산품이지 화학물질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항균필터가 환경부 소관이라면 항균처리된 신발이나 가구도 모두 환경부 소관이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유해 화학물질 소관 부처를 일원화하고 흡입 유해 독성 물질에 대해 보다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정제와 방향제 등 생활 환경품은 환경부, 화장품이나 의약외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산품은 산업부 소관이다.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운 구조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