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서희가 서희재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서희가 서희재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유일한 동양인 수석무용수 서희(30)는 올 상반기 시즌을 쉴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최근 두 달 사이에만 ‘잠자는 숲속의 미녀’ ‘세레나데’ ‘로미오와 줄리엣’ 등 7편의 전막 발레에서 주역을 맡았다. 지난 14일 시즌 공연을 마치고 3주간의 정기 여름휴가를 얻은 서희는 휴양지 대신 한국행을 택했다. 국내에서 올해 처음 열리는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YAGP) 예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오는 22~24일 열리는 이 콩쿠르에서 행사 총괄과 심사, 마스터클래스 지도를 맡은 서희를 18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났다.

“YAGP 예선의 서울 유치를 위해 2012년부터 노력해 마침내 결실을 맺었어요. 제가 누린 것을 재능 있는 한국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5년간 미국에서 세운 계획대로 하나하나 실현되는 것을 보니 너무나 재미있고 뿌듯했습니다.”

"후배 위한 자선활동은 발레인생의 새로운 동력"
YAGP는 만 9~19세 발레 무용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세계 최대 발레 콩쿠르다. 세계 정상급 발레단에 들어갈 수 있는 등용문으로 통한다. 서희는 2003년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 무용수 최초로 시니어(만 15~19세)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2년 뒤 ABT에 입단했다.

“2012년 외국 학생들의 YAGP 도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퍼스트 포지션’을 본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항공권부터 숙박비, 통역 등 콩쿠르 출전에 드는 비용이 큰 부담이더라고요. 뉴욕 유학 시절 현지에서 예선을 치른 저는 그런 어려움을 잘 몰랐죠. YAGP 예선 서울 유치는 한국 후배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사서 고생을 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바쁜 공연과 연습 일정 사이 짬을 내 YAGP 재단을 설득하고 모금 활동을 벌였다. 모금 행사에 쓰일 음식 메뉴 선정부터 예선 담당 조직 구성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지난해 말 국내에 자선기부단체 ‘서희재단’을 설립하고 예선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말 손이 많이 갔어요. 연습을 줄일 수는 없으니 쉬는 시간에 유치 업무를 해야 했죠. 한국의 재능 있는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고 YAGP 재단을 계속 설득해 결국 한국 예선 유치를 받아냈습니다.”

서울에서 콩쿠르가 열리는 덕분에 한국 학생의 참가가 확 늘었다. 지난해에는 예선 참가자 수가 10명 안팎이었으나 올해는 비디오 예선에서만 80명이 뽑혔다. 이 중 이번 예선을 거쳐 10명가량이 내년 뉴욕에서 열리는 본선에 진출한다. 예선 참가자 중 일부는 등수에 관계없이 미국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스쿨, 독일 베를린 국립 발레학교, 파리 오페라발레학교 등 명문 발레학교의 장학생으로 선발된다.

“YAGP 예선을 한국에 유치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콩쿠르의 장학 프로그램 때문입니다. 이 콩쿠르는 등수 경쟁보다 재능 있는 꿈나무 교육을 우선합니다. 예선 심사에 참가할 학교를 초청할 때도 발레단 부속 학교를 위주로 골랐어요. 콩쿠르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이 훌륭한 무용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는 “발레는 순간의 예술”이라며 “멋진 순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자선재단 활동을 은퇴 후로 미루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발레계의 흐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금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적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줄 게 많을 때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었어요. 자선활동은 제게 일이 아닌 열정입니다. 굳이 은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서희는 “자선재단 활동을 하지만 우선순위는 언제나 발레 그 자체”라며 “서희재단을 통한 자선활동은 스스로 발레에 더 열중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발레는 제 직업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자선활동은 제 인생의 열정 프로젝트이고요. 무용수와 재단의 대표 활동을 병행하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예요. 사회 환원 활동을 하는 기쁨 덕분에 발레를 더 열심히 하고, 제가 좋은 무용수로 활동하면 재단 업무가 잘 풀리는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