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터키의 모순
터키 사람들은 나라 이름을 ‘튀르키예(T rkiye)’라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 튀르크의 주인 혹은 튀르크의 땅이란 뜻이다. ‘튀르크’라는 종족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6세기 중반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떨친 돌궐족이다. 터키 역사교과서는 돌궐이 제국의 모습을 갖춘 559년을 자신들의 건국 역사로 가르친다. 1959년에는 건국 1400주년 행사를 열기도 했다.

서돌궐의 후예인 튀르크계 오구즈족이 1299년 현재의 터키 지역에 세운 왕조가 오스만제국이다. 이들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것을 비롯 약 4세기 동안 중부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 등 지중해 연안 대부분을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오스만제국은 18세기 이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1783년 러시아에 크리미아를 뺏겼고 19세기 들어서는 그리스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차례로 잃었다. 1908년에는 불가리아가, 1912년에는 알바니아가 독립했다. 터키가 ‘이류 국가’로 전락한 결정적인 계기는 1차 세계대전이었다. 독일 편에 섰다가 패전했고 전후 아라비아 지역의 여러 영토를 잃었다.

터키의 근대화는 1923년 케말 아타튀르크를 대통령으로 한 터키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시작됐다. ‘케말 파샤(사령관이란 뜻)’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케말 아타튀르크는 아랍 문자 대신 라틴 문자를 쓰게 하고 이슬람의 역할을 줄이는 등 터키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을 축소하려고 노력했다. 터키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독일,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서방의 편에 섰다.

터키는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있고 많은 이슬람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에 따라 20세기 후반 이후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엊그제 터키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가 여섯 시간 만에 진압되는 사건이 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과도한 이슬람주의 정책에 반발하는 군부와 세속주의 헌법 추종세력이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년여 전에도 비슷한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2010년 2월22일 일부 군부가 이슬람 지향주의로 넘어가는 정부를 교체하겠다며 군사 행동을 벌이려다 발각돼 군부 인사 49명이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터키가 이슬람 신정 국가로 바뀐다는 건 서방의 시각에선 악몽이다. 국제사회가 ‘현 정부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도 터키 쿠데타를 예사롭지 않은 사건으로 보는 속내다. 터키가 직면한 국가 진로의 모순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