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자원이 곧 국부의 척도다"…민둥산을 숲으로 바꾼 현신규
“평생을 나무하고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무는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내가 나무 속에 있는지 나무가 내 속에 있는지조차 모를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임목육종학자 고(故) 현신규 박사(1911~1986)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그는 일본의 수탈과 6·25전쟁을 거치며 황폐해진 조국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이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리기테다소나무’, 한국 토양에 잘 맞는 포플러나무인 ‘은수원사시나무’를 육종해 산림을 다시 푸르게 하는 데 기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국토 녹화에 공헌한 현 박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은수원사시나무에 그의 성을 따서 ‘현사시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11년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태어난 현 박사는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서울대 농과대학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에 입학시켰다. 이후 일본 규슈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에서 연구직으로 일했다. 산림조사에 나갈 때마다 헐벗은 숲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다시 규슈대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1945년 전쟁 막바지 한국인으로서 신변에 위협을 느껴 귀국해야 했다. 이후 수원농업전문학교에서 조교수로 교편을 잡으며 연구자료를 정돈해 규슈대로 보냈고, 1949년 한국인 최초로 임업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6·25전쟁 중인 1951년, 현 박사는 미국 정부의 한국 재건 계획에 따라 2년간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림유전연구소에 유학했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온 품종을 교배해 만든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내가 귀국해 할 일이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1952년 ‘기적의 소나무’로 불리는 ‘리기테다 소나무’를 개발해냈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지만 성장 속도가 느린 리기다소나무와 성장이 빠른 테다소나무를 교배해 장점만을 살린 품종이다. 리기테다 소나무는 1962년 미국 학회지에도 소개됐다.

현 박사는 성장 속도가 빨라 산림녹화에 적합한 품종인 포플러 개량 연구에도 힘썼다. 1953년 유럽산 은백양과 한국의 수원사시나무를 교배해 평지뿐만 아니라 산지에서도 잘 자라는 ‘은수원사시나무’를 만들었다. 그의 노력 덕분에 헐벗었던 산림이 빠른 속도로 녹색으로 물들었다. 1982년 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평가했다.

현 박사의 제자인 이경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선생님은 산림이 바로 국부의 척도라는 ‘산림부국론’을 거듭 강조하셨다”고 회상했다.

유하늘 기자 sk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