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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침해도 되는가"…북한김일성 소련·중국 승인 요구, 남한에서 미군 철수…스탈린 "정세변했다" 남침 승인

입력 2016-07-15 16:40:59 | 수정 2016-07-15 16:40:59 | 지면정보 2016-07-18 S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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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28)
6·25전쟁은 북한 김일성의 발의와 스탈린의 승인, 마오쩌둥의 참여로 시작된 침략 전쟁이다.기사 이미지 보기

6·25전쟁은 북한 김일성의 발의와 스탈린의 승인, 마오쩌둥의 참여로 시작된 침략 전쟁이다.

1949년 김일성 소련 방문…전쟁 논의

대한민국이 건국된 뒤에도 나라 안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이 줄을 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여순 반란과 그 뒤를 이은 숙군, 국회 프락치 사건 등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 일과 반민특위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을 때 북한에서는 남한을 침략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 계획은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진 1948년 9월9일 직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김일성은 그때 ‘국토 완정(國土完整)’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한 나라의 영토를 하나의 주권으로 완전하게 통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김일성은 1949년 신년사에서는 국토 완정이라는 말을 13번이나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로 여겼던 것이지요.

그런데 북한 혼자만의 힘으로는 남한과 전쟁할 수 없었습니다. 군사력도 문제였지만 소련이나 중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괴뢰(꼭두각시)였기 때문입니다. 1949년 3월 김일성은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스탈린에게 남한을 침략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스탈린은 남침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한국군에 비해 북한군이 더 강한지도 알 수 없었고 아직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스탈린은 북한군에 장비를 지원해주었습니다.

한 달 뒤 김일성의 특사인 김일이 중국의 마오쩌둥을 방문했습니다. 남침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오쩌둥도 아직은 남침할 때가 아니라고 말렸습니다. 중국은 국민당 군대와 공산당 군대(중공군) 간 내전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국제 정세도 아직 북한에 유리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대신 중공군의 일부를 북한군에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1949년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일성이 기대했던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은 500명 정도의 군사 고문단만 남기고 남한에서 철수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는데도 미국이 국민당 편에서 싸워주지 않았습니다. 또 소련에서는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김일성은 다시 스탈린을 졸랐습니다. “이승만이 공격해오길 기다렸는데 그러지 않아서 남한 해방이 지연되고 있으므로 북한의 공격 행동에 대한 지시와 허가를 원한다”고 말이지요. 이때가 1950년 1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은 여전히 반대했습니다.

한 달 안에 남해안까지 점령 계획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앞 계단에 장식된 6·25 참전 국가 국기들. 유엔 결의에 뜻을 같이한 16개국이 전투부대를 보냈다.기사 이미지 보기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앞 계단에 장식된 6·25 참전 국가 국기들. 유엔 결의에 뜻을 같이한 16개국이 전투부대를 보냈다.

김일성이 가까스로 스탈린의 허락을 받아낸 것은 4월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제야 스탈린은 “국제 정세가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며 남침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동의도 얻으라고 했지요. 마오쩌둥은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통일에 착수하자는 조선 사람들의 제의에 동의한다”는 스탈린의 편지를 받고 남침에 동의했습니다.

마침내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동의를 받아낸 김일성은 6월25일에 남한을 침략한다고 날짜를 잡았습니다. 북한은 혹시 미국이 군대를 보내오더라도 그들이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8월15일까지는 서울에 공산주의 정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전쟁 개시 이틀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5일 안에 수원~원주~삼척을 잇는 선까지 내려오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보름 안에 군산~대구~포항을 잇는 선까지, 한 달 안에 남해안까지 진출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습니다.

북한과 소련은 서울만 점령하면 남한에서 20만 남로당원이 함께 일어나 상황을 쉽게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전쟁을 끝낼 계획이었으므로 군인들에게 겨울 전투에 대한 준비는 시키지 않았습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침략해왔습니다. 이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남침의 조짐을 눈치 채지 못한 한국군은 그 전날 장병들에게 휴가나 외출, 외박을 허락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전방 지역에는 병력의 3분의 1 정도가 자리를 비우게 되었지요. 북한군의 병력이나 장비는 남한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몇 차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엔 “한반도 자유 위해 공동행동” 결의

북한의 남침 소식을 들은 유엔은 바로 다음 날인 6월26일 긴급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적대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지요. 하지만 북한은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그러자 유엔은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공동 행동’을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유엔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참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7월24일 한국을 위해 싸울 유엔군사령부가 정식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유엔군 사령관은 맥아더 장군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유엔 결의에 뜻을 같이 한 16개 나라가 전투부대를, 5개국은 의료지원단을 보내기로 했고, 39개국은 물자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회원국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이 한반도까지 도착하기까지는 두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가 힘든 전투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글=황인희 / 사진=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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