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樂)·가(歌)·무(舞)에 빠진 풍류 55년…김영재 명인 "흥과 멋에 취해 삽니다"
‘종합예술인.’ 해금 거문고 명인이자 소리꾼, 무용수인 김영재 명인(69)에게 으레 붙는 말이다. 55년간 국악 외길을 걸었고 1998년부터 15년 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창작 국악곡도 여럿 발표한 김 명인이 오는 19일 국악 인생 55년을 아우르는 신작 ‘시간 속으로’를 선보인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여름 음악축제 ‘여우락’에서다. 서울 서교동의 국악 전용 소극장 우리소리에서 김 명인을 만났다.

국악 명인 김영재 씨
국악 명인 김영재 씨
“저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악(樂)·가(歌)·무(舞)가 있는 종합예술에 매료됐습니다. 굿 구경을 좋아했거든요. 6·25전쟁 직후엔 보고 들을 게 없었잖아요. 거리에는 고아와 집을 잃은 사람이 넘쳐났고요. 그런데 굿판에는 춤과 음악이 있고, 떡도 주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그저 좋았습니다. 외로움과 슬픔을 치유받는 기분이 들었죠.”

동네마다 열리는 굿판을 따라다니던 아이는 한국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중·고교) 중학 1기생으로 입학해 국악 공부를 시작했다. 김 명인은 “요즘 아이들이 거리에서 비보이 춤을 즐기다 무용학교에 가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며 웃었다. 학교에서는 해금, 거문고, 가야금, 판소리, 민요, 농악, 시조 등 다양한 국악 장르를 배웠다.

“선생님들이 예술을 제대로 하려면 여러 가지를 배워야 한다고 하셨어요. 춤을 추려면 음악을 알아야 하고, 소리를 하려면 시조와 가사를 배우는 것이 더 깊은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나중에는 공부 욕심이 생겨서 서양 악기와 작곡도 배웠습니다.”

김 명인은 “여러 악기를 다루면 또 다른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악기마다 음색이 달라 ‘성깔’이 있다는 것. 그는 “연주를 하다 보면 악기에 따라 맞는 감정이 있는데 기분에 따라 어떤 날은 가야금을 연주하고, 어떤 날은 온종일 피아노를 칠 때도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도 이런 그의 다양한 음악 경험을 최대한 살려 펼칠 계획이다. ‘소릿길’을 주제로 거문고 산조와 학춤, 해금 산조, 민요 등 음악과 가무를 한데 모았다. 그의 국악 인생을 ‘길’ ‘집중’ ‘열정’ ‘교감’ ‘회상’의 5개 장으로 나눠 연출했다. 거문고 명인 신쾌동, 해금 명인 지영희 등 스승들의 영상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무대도 마련한다.

국악과 미술의 만남도 시도한다. 김 명인이 문인화가인 김무호 화백과 함께 만드는 즉흥 무대다. 김 명인은 철가야금 산조에 이어 삼현육각(6인조 악기 편성의 일종) 선율에 맞춘 춤을 선보이고, 김 화백은 그 옆에서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김 명인은 2001년부터 5년 주기로 삶을 돌아보는 신작을 내고 있다. 2011년에는 거문고, 해금, 가야금, 철가야금으로 각각 연주한 즉흥 시나위 앨범을 냈다. 그는 “공연이나 음반은 내가 음악인으로서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라고 했다.

“5년마다 기념 작업을 하다 보면 ‘이제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해볼까’를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게 됩니다. 이런 공연을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국악계에는 음악인의 기록을 남기거나 CD를 내는 경우가 드문데, 스스로 기록을 남기면서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드는 게 재미있어요.”

그는 요즘 다른 장르 음악가들과의 협업에도 한창 힘을 쏟고 있다. 오는 29~30일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물들다’ 공연에서 가수 송창식, 재즈피아니스트 원영조, 소리꾼 이봉근 등과 협연한다. “대중음악계 거장인 송창식 씨와 함께 작업하면서 그의 음악적 깊이를 느꼈습니다. 포크록과 전통 민요는 음계나 음정이 달라 불편할 텐데도 그가 잘 맞춰주고 있어요. 해금과 거문고, 기타가 자유롭게 선율을 주고받는 무대가 될 겁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