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민간부문 경제 활력이 둔화하면서 정부 재정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 여파 등으로 기업 투자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정부가 잇따른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을 활용한 ‘땜질식 경기부양’을 되풀이한 탓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구조 개혁과 규제 철폐를 병행해 민간부문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정부 재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재정중독' 빠진 한국…정부 돈 안풀면 성장 휘청
◆갈수록 높아지는 재정기여도

13일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성장률 2.6% 중 정부 재정 기여분은 3분의 1가량인 0.8%포인트에 달했다. 구체적으로는 재정을 통한 정부 소비가 0.5%포인트, 정부 투자가 0.3%포인트 성장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정부의 소비와 투자가 없었다면 작년 성장률이 1.8%에 머물렀을 것이란 얘기다.

2011년만 해도 3.7%의 경제성장률 중 정부 재정이 기여한 몫은 0%(소비 0.3%포인트, 투자 -0.3%포인트)였다. 2012년 2.3% 성장률 중 재정기여도가 0.4%포인트(소비 0.5%포인트, 투자 -0.1%포인트)로 높아졌고,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 2014년에도 경제성장률 중 0.3~0.4%포인트를 정부 재정이 기여했다.

올해는 이런 추세가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올해 1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이 0.5%였는데, 민간 부문 기여도는 제로(0)인 반면 정부 기여도는 0.5%포인트에 달했기 때문이다.

◆“땜질식 재정 처방 악순환”

재정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지난 몇 년간 세계경기 둔화 여파 등으로 기업의 수출 및 실적이 악화하고 덩달아 투자가 감소한 탓이다. 올 들어서도 설비 투자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월 -6%, 2월 -7.9%, 3월 -7.4%, 4월 -2.7% 등으로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해운 등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것도 민간 소비 등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경제 체질 개선 없이 윗돌을 빼 아랫돌을 괴는 식의 땜질식 처방으로 지난 몇 년간 경제 성장을 관리한 것이 한국 경제의 재정의존도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2013년 이후 정부가 경기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집행하다 보니 하반기 ‘재정 절벽’ 우려가 커지고, 이걸 막기 위해 추경 등 재정 보강에 나서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는 정부 돈으로 경제 성장을 사는 ‘재정 중독’에 빠져버렸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13년 17조3000억원, 지난해 11조5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한 데 이어 올해도 10조원의 추경을 편성할 방침이다.

◆“민간 부문 활력 되살려야”

문제는 재정을 통한 경제 성장은 ‘기회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우선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 일례로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추경 등에 따른 세입 결손과 지출 확대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0% 규모인 46조8000억원에 달했다.

구조개혁 지연도 또 다른 부작용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3년 연속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에도 못 미친 이른바 ‘한계기업’은 2010년 2400개(전체의 11.4%)에서 2014년 3239개(14.3%), 작년 3278개(14.7%)로 늘어났다.

조동근 교수는 “추경 등을 통한 경기부양이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좀비기업’을 늘린 꼴”이라며 “민간부문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구조 개혁과 규제 철폐, 획기적인 기업 투자 유인책을 병행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재정 의존도를 낮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