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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실명과 허명

입력 2016-07-12 18:16:06 | 수정 2016-07-13 00:20:16 | 지면정보 2016-07-13 A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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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종 < 서울서부지방법원장 kasil60@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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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첫 부분이다. 어떤 것에 이름이 붙여질 때 비로소 존재론적으로 실재하게 되는 현상학적 인식론의 관점을 표현한 것이다.

법의 세계에서도 반드시 명칭이 필요하다. 특히 권리와 의무가 첨예하게 다뤄지는 법의 세계에서는 누가 실질적 주체인지 또는 어떤 행위가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실제 무엇인지를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실체와 명칭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제법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법원의 대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외관에 따라 외부로 드러난 것에 권리를 부여하는 경우다. 거래 안정을 위해 획일적으로 권리관계를 확정할 필요가 있을 때 주로 나타난다. 예컨대 어떤 예금에 대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면 명의상 예금주가 진실한 권리자로 추정받는다. 물론 명의를 차용한 실질 권리자는 이를 입증해 구제받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이 험난하고 금융실명제 위반에 따른 불이익이나 제재도 감수해야 한다.

부동산도 명의를 다른 사람 앞으로 신탁해 놓으면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최근 대법원은 중간생략 등기형 명의신탁에서 종전 입장을 변경해 수탁자가 이를 처분해도 횡령죄의 책임이 없다고 했다. 반사적으로 명의자가 보호를 받는다.

둘째는 외부로 나타난 명칭을 불문하고 실질을 꿰뚫는 경우다. 법률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탈법적인 외형을 만들어내는 경우에 적용된다. 예컨대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아무리 매매계약서를 그럴듯하게 작성해도 대가 없이 이전됐으면 증여로 인정한다. 조세를 포탈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해도 실질과세의 원칙상 세금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아동학대를 둘러싸고 미취학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가 있었다. 그러자 출생 신고된 아이가 원래 태어나지 않았으니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해달라는 청구가 법원에 들어왔다. 다자녀 주택특별공급을 받기 위해, 다자녀 양육수당이나 다자녀 추가공제를 받기 위해, 자동차 취득세 등을 감면받기 위해 허위로 출생신고를 했다가 미취학 아동 관련 조사가 나오자 이제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실제 태어나지 않은 아이니 정정은 되겠지만 조세포탈, 사기 등의 죄책을 면하기 어렵다. 여러 고민과 유혹이 있겠지만 실체와 외형을 일치시켜야 한다. 겉과 속이 다를 때 초래되는 위험은 생각보다 크다. 정직은 가장 좋은 방책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방책이다.

이태종 < 서울서부지방법원장 kasil60@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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