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규 한국폴리텍대 강릉캠퍼스 발전설비과 교수(가운데)가 학생들에게 정밀 진동측정장치 작동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 제공
김연규 한국폴리텍대 강릉캠퍼스 발전설비과 교수(가운데)가 학생들에게 정밀 진동측정장치 작동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 제공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못해 직업훈련을 받기 위해 한국폴리텍대에 입학하는 청년이 급증하고 있다. 이른바 ‘유(U)턴 입학생’이다. 청년(15~29세) 실업률이 10%를 넘는 등 사상 최악의 취업난과 맞물려 85%가 넘는 한국폴리텍대의 취업률이 대학 졸업생들을 유인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졸후 다시 직업훈련…폴리텍 신입생 24% 고학력자
12일 고용노동부 산하 직업훈련기관인 한국폴리텍대에 따르면 올해(지난 3월) 2년제 산업학사 학위(다기능) 과정에 입학한 9267명 중 869명(9.4%)은 고학력자(전문대·4년제대 졸업 이상)였다. 입학생 10명 중 1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훈련을 받기 위해 들어온 것으로, 고학력자 비중은 2006년 154명(1.7%)에 비해 5.6배 늘었다.

1년 과정인 기능사 과정 입학생 중 고학력자는 절반에 육박했다. 올해 기능사 과정 입학생 2803명 중 전문대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 비중은 47.5%로 10년 전에 비해 12.5%포인트 증가했다.

기능사·산업학사 학위 과정을 합산하면 올해 한국폴리텍대 청년 직업훈련 과정 입학생 중 24.2%는 고학력자였다. 4명 중 1명은 전문대나 4년제 대학을 이미 졸업하고 다시 한국폴리텍대에 입학했다는 얘기다.

이 중 절반(48%)은 인문계열 전공자였다. 이공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 취업난이 반영된 결과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산업학사 학위 과정에 현행 50%를 선발하게 돼 있는 특성화고 출신 비중을 30%로 낮추는 내용의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 개정 시행령을 오는 28일부터 적용한다. 특성화고 출신 학생 비중을 낮춰 인문계열 학생들의 입학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이우영 한국폴리텍대 이사장은 “대학에서 4년을 공부해도 전공을 살려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한국폴리텍대에서는 철저히 현장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는 만큼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입학한다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한국남동발전에 입사한 김민회 씨(32)에게 한국폴리텍대 입학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7년 전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단기 직장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김씨는 지난해 한국폴리텍대 강릉캠퍼스 발전설비정비 1년 과정을 수강하던 중 한국남동발전 취업에 성공했다.

2009년 관동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여느 동기들처럼 경찰공무원을 준비했다. 은행에서 청원경찰로 근무하면서 경력도 쌓고 나름대로 시험 준비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졸업 후 김씨는 여러 직장을 다녔지만 대부분 근무기간이 1년도 안 됐다.

그랬던 그가 한국폴리텍대에 입학하게 된 것은 아버지 덕분이었다. 강릉캠퍼스 베이비부머 대상 6개월 과정(냉동공조)을 수료한 아버지가 “차라리 기술을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한국폴리텍대 입학을 권유한 것. 아버지의 조언에 힘입어 김씨는 곧바로 입학 준비에 들어갔다. 몇 개월간 기계정비와 관련한 책을 구입해 공부한 덕에 입학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수업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난해 3월 입학 이후 9월 한국남동발전 입사가 확정되기 전까지 6개월간 김씨는 기계정비·산업안전산업기사, 에너지관리·공조냉동기계 기능사 등 4개 자격증을 땄다.

김씨는 “기술의 ‘기’자도 모르고 살았는데 예전 대학 다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수업을 받으면서 기술도 익히고 자격증도 딸 수 있었다”며 “무엇보다 불안정한 미래가 항상 걱정이었는데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한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김씨 연봉은 4000만원 수준이다.

기능사 과정(1년)인 강릉캠퍼스 발전설비정비 과정은 국내 발전소의 정비·유지 업무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취업률은 90% 수준이다.

한국폴리텍대 강릉캠퍼스는 올해부터 아예 5개 발전업체와 채용을 보장하는 협약을 맺고 고교 졸업생 대상의 2년 산업학사 학위 과정을 개설했다. 처음 개설된 과정인 데도 정원 30명 모집에 115명이 몰렸다. 합격자 36명(정원의 20% 내에서 추가 선발 가능) 중 28명은 4년제 대학 재학 중이거나 졸업생이었다.

원주대 해양생물학과를 졸업한 김영래 씨(27)는 강릉과학단지 연구원을 그만두고 입학했다. 김씨는 “예전에는 어른들이 ‘공부 안 할 거면 기술이나 배우라’고 했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며 “기술을 배워야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입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