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세상을 바꾸는 '긱' 일자리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의 최근 화두는 ‘긱 경제(Gig economy)’다. 연설마다 긱 경제를 언급하고 있다. 클린턴은 긱 경제가 미국의 기회를 만들고 혁신을 촉발하지만 사회안전망을 해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정보기술(IT)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중을 둔다. 한때 긱 경제를 부정적 시각으로 봤던 클린턴이었다.

미국에선 그만큼 긱이 대세다. 긱은 모바일에 의해 제공되는 일자리다. 소비자가 창출한다 해서 온디맨드(on demand)란 이름도 붙인다. 단순 음식배달이나 심부름, 주차대행만이 아니다. 택시는 물론 쇼핑도우미, 가사도우미, 요리사 등도 모바일로 호출이 가능하다. 법률, 의료, 기업컨설팅 등 전문직들도 모바일 플랫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바일 혁신이 노동시장 흔들어

법률 전문 앱(응용프로그램) 서비스 액시엄은 창업한 지 불과 5년 새 1500명의 변호사를 확보했다. 고객은 로펌에 비해 싼값으로 이들을 활용하고 변호사도 수익을 더욱 많이 챙긴다. 사무실 운영비가 그만큼 막대하다. 의료 서비스 메디캐스트도 마찬가지다. 환자가 앱에 증상을 기록하면 두 시간 내에 의사가 달려온다. 의료보험 등도 모바일에서 처리한다.

이들은 기존 프리랜서와 다르다. 독일식 미니잡이나 일본의 프리타와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플랫폼 내에서 활동하고 수익을 창출한다. 시간의 자유 활용에 방점을 두는 사람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이들이 미국 전체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미국 프리랜서연합은 미국 고용 인력 전체의 34%가 이런 직종에 종사한다는 추정을 내놓고 있다. 카츠 하버드대 교수와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팀은 최근 논문에서 18.5%로 추정한다. 10년 전에는 10%에도 미치지 못한 인력이었다. 하지만 10년 뒤 40%가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들은 고학력 업종이 긱으로 변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한 시대

해결할 과제도 남아 있다. 당장 이들의 지위가 문제가 된다. 이들을 직원(employee)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계약자(contractor)로 볼 것인지 논쟁 중이다. 미 의회는 올 2월 펴낸 보고서에서 정부가 이런 판단을 빨리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에선 우버 운전자를 직원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아예 규정해 버렸다. 연금과 보험 등 전통 기업에서 보장하는 편익도 이들에게는 없다. 일부에선 이들이 자유 시간을 향유하는 만큼 이런 보장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미국 노동시장 패러다임의 급속한 변화다. 직장은 없고 직업만 존재하는 시대다. ‘다섯 명의 최고경영자(CEO)와 비서 한 명, 청소부 한 명’으로 이뤄진 21세기형 기업이 실제로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 기업들과 긱 업체들 간 치열한 경쟁도 예고되고 있다. 택시업체들은 우버와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혁신과 유연성이 결국 정규직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미국 경제도 이런 변화를 따라간다. 유럽도 재빨리 대응하고 있다. 물론 이들에겐 정규직 비정규직의 문제가 전혀 논의 밖이다. 오로지 일자리시장에서 어떻게 혁신하고 생존하는가만이 과제다. 지금 한국도 이런 쓰나미에서 피할 수 없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