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한경 주필 브렉시트 영국을 가다] 브렉시트 지지파의 거두 에이먼 버틀러 애덤스미스연구소 소장과 대담
애덤스미스연구소는 런던 관청가에 있었다. 에이먼 버틀러 소장은 한국에도 꽤 알려진 시장주의 학자다. 브렉시트를 놓고 시장진영도 분열됐다. 그는 브렉시트 지지그룹의 거두다. 런던은 온통 논쟁 중이었다. 대학들도 논전에 뛰어들었다. 그와의 대담을 소개한다.

▷정규재 주필=분열이 심하다.

▷버틀러 소장=우리 사무실에서도 견해가 다르다. 이민, 경제 등 문제들이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학생이던 1975년엔 EU에 남아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학생운동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우리가 자유무역존(free trade zone)이 아니라 정치적 연합체(political union)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럽경제공동체(EEC)에서 유럽공동체(EC)로, 다시 EU로 되는 과정을 봐라.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정부 시절에 더욱 그랬다. 그는 EU의 사회주의 색채를 띤 법안에 서명했는데 노동규제, 노동장소 규제 등이 그런 것이었다. 브렉시트는 장기적으로 영국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규재 한경 주필 브렉시트 영국을 가다] 브렉시트 지지파의 거두 에이먼 버틀러 애덤스미스연구소 소장과 대담
▷정 주필=유럽과의 차이는?

▷버틀러 소장=역사적, 지적 배경이 다르다. 2000년 전 ‘커먼 로(common law)’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은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너의 자유다’라는 원칙이다. 유럽에서는 무언가를 명령하는 당국이 늘 존재해왔다. 유럽 법은 기본적으로 규제다. 또 다른 문제는 유럽을 하나의 국가로 만들자는 움직임이다. 영국은 그것을 원치 않는다. 브뤼셀은 EU가 생명 있는 실체이기를 원한다. 수많은 관료가 고용됐고 이들은 미국을 능가하는 하나의 국가를 만들고 싶어 한다.

▷정 주필=대학들은 입장이 어떤가.

▷버틀러 소장=대학들은 유럽을 떠날 경우 연구 기반을 잃을까 걱정한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많은 대학이 잔류를 선호한다. 케임브리지는 EU로부터 상당한 연구자금을 지원받는다. 스코틀랜드도 그렇다. 그들은 잔류에 투표했다. 스코틀랜드는 유럽, 특히 브뤼셀로부터 도로 다리 등 엄청난 인프라 지원을 받는다. 농업 분야도 그렇다. 농부와 지주들 역시 EU의 보조금 지원을 받는다. 소규모농은 유럽의 규제를 싫어하지만 대규모농은 보조금을 좋아한다. 우리는 지금 떠나야 한다. 더 늦어지면 영국은 규제와 보조금으로부터 독립된 국가가 될 수 없다.

▷정 주필=브렉시트 반대파는 누구인가.

▷버틀러 소장=좌우에 모두 다 있다. 우파는 규제나 보조금, 큰 정부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수당 내에서도 ‘떠나자’와 ‘남자’가 갈렸다. 대체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스테이(stay)를 선호하고 보통 사람이나 권력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은 리브(leave)를 지지한다. 이민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찬성그룹이다. 청소나 과일 따기, 레스토랑 등에서 저임금을 놓고 경쟁하는 사람들이다.

▷정 주필=세계 언론이 영국을 비난하고 있다.

▷버틀러 소장=유럽 밖에서는 EU를 잘 알지 못한다. 오바마는 영국이 EU에 남기를 원했다. 그러나 어떤 미국인도 미국을 영국처럼 EU에 편입하자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을 캐나다 토론토에 두거나, 미국의 법을 다른 나라 사람이 만들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EU는 초국가(super state)다. EU에서 만든 규제가 영국 기업들에 적용된다. 영국 시골 마을에서 중소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브뤼셀 규제를 따라야 한다. 우리가 미국에 상품을 수출한다면 당연히 미국 기준에 맞춰야 한다. 하지만 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몇 명을 고용해야 하는지, 그들에게 임금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며칠의 휴일을 줘야 하는지는 강요하지 않는다.

▷정 주필=정말 영국은 유럽을 떠날 것인가. 협상의 여지는 없나?

▷버틀러 소장=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향후 영국의 지위다.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스위스다. 스위스는 유럽 자유무역지역 멤버다. 스위스는 유럽과 양자 간 교역협상을 벌이되 원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EU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지 결정한다. 스위스와 유럽 간 자유로운 여행은 불가하다. 두 번째는 유럽경제지역(EEA)이다. EEA는 유럽 전체와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등 비회원국도 포함한다. EU 비회원국들은 유럽의 규제를 따를 필요가 없다. 아이슬란드 어업은 유럽의 어업 규제를 따르지 않는다. 노르웨이는 유럽인들의 이민을 자유롭게 받지만 리히텐슈타인은 그렇지 않다. 리히텐슈타인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자유이민을 거부한다. 영국이 노르웨이나 이들 EU 비회원국처럼 선별적으로 EU 규제를 수용하는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이민 쿼터를 정하는 등의 방식이다. 세 번째는 완전히 유럽에서 떠나 세계의 어떤 나라와도 자유롭게 교역하고 호혜적 무관세를 주고받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뉴질랜드 캐나다 같은 영연방 국가들이 하는 방식이다.

▷정 주필=세 번째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버틀러 소장=잘 모르겠다. 두 번째 옵션이 가능성이 크긴 하다. 오늘도 파운드화가 떨어졌다. 영국이 EU의 중심국가가 아니라는 증거다. 그러나 영국은 유럽과 어울릴 것이고 물건도 팔 것이며 우리의 규칙도 정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은 다른 나라와도 같은 방식으로 교역할 것이다.

▷정 주필=영국에서 브렉시트 찬반 투표 다음날 한국은 영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최초로 제의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일본도 제의했다.

▷버틀러 소장=영국과 FTA를 하려면 아직까지는 EU를 통해서 해야만 한다. EU는 중국과 FTA 협상을 하고 있는데 시간을 한도 끝도 없이 끌고 있다. 왜냐면 EU 내 수많은 나라, 수많은 이해관계자 이야기를 다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토마토 농장이 원하지 않으면 협상이 중단된다. EU를 통해 FTA 협상을 하니 많은 나라와의 협상이 교착상태다.

▷정 주필=유럽의 과거를 보면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은 통합 유럽을 주창해왔다.

▷버틀러 소장=학생일 때 그 문제를 토론하곤 했다. 미국은 매우 중앙집권화된 국가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권력은 워싱턴DC에 있다. 나는 중앙집권화된 국가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독립적 국가들의 연합을 선호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클럽은 멤버들이 원할 때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EU는 우리가 지금껏 보아왔던 것처럼 떠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정 주필=협상까지 아직 2년이 남았다.

▷버틀러 소장=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EU에 불만을 털어놨지만 그 어느 나라도 EU를 떠나지 못하고 갇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EU 집행부는 원하는 건 뭐든지 강요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수많은 규제가 생겨났고 집행부는 관료적이고 비민주적이며 무책임하게 됐다.

▷정 주필=혹시 EU가 쪼개질 것으로 보나.

▷버틀러 소장=많은 사람들은 EU가 10년 내로 분할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굳이 지금 영국 혼자 떠날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배가 빙산에 충돌할 때까지 배 안에 머물고 싶지는 않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으로 다른 나라들 역시 EU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유로화가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계속 살아남을 수는 없다. 브렉시트는 유럽에 상당한 압력을 주고 있다. 유로화는 경제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정 주필=브렉시트로 EU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보나.

▷버틀러 소장=유럽시장이 영국시장보다 더 빨리 가라앉을 것이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 캠페인 초기에 만약 영국이 EU를 떠나면 30년 후 모든 가정이 4300파운드의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는 리포트를 냈다. 하지만 이는 조작된 수치다. 우선 계산 자체가 엉터리다. 브렉시트의 긍정적 측면은 보지 않았다. EU 규제와 EU 정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자유무역 등 잠재적 이점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았다.

▷정 주필=영국의 자신감은.

▷버틀러 소장=영국은 전체나 집단보다는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법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투자하기에도 좋은 나라다. 이런 가치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것 또한 우리의 전통이다. 우리는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호주 등으로 뻗어 나갔고 자유, 커먼 로, 민주주의, 자유교역의 가치를 전파한다.

▷정 주필=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독립 가능성은.

▷버틀러 소장=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역시 EU의 규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첫째 이유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점은 더욱 강력한 조건이다. 스코틀랜드 기업의 경제활동 대부분이 EU가 아니라 잉글랜드에서 일어나고 있다. 북아일랜드도 결국은 현상유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정 주필=차기 총리는 누가 되나.

▷버틀러 소장=테리사 메이가 될 것이다. 브렉시트와 관련해 덧붙이고 싶은 말은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마지막 국가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유럽 정치의 전개에 따라 내년부터 대대적인 개편이 일어날 수도 있다. 관료주의적 중앙집권적 비민주적 절차와 시스템이 지속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