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 DB
/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31은 하루에 한 가지씩 한 달 내내 새로운 맛을 선보인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골라먹는 재미’란 광고 카피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매장을 찾으면 어쩐지 익숙한 맛에 자꾸 손이 가더라고요.

저만 그런 게 아니더군요. 11일 배스킨라빈스를 운영하는 비알코리아에게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위 5가지 맛에서 매출 30%가 나왔습니다. 매월 새로 선보이는 ‘이달의 맛’을 포함한 32~33가지 맛 가운데 톱5 점유율은 꾸준히 30% 내외를 유지했다고 해요.

<표>배스킨라빈스 월별 맛 인기순위. 최근 두 달간 톱5에 든 맛은 같았다. 이들 매출 비중이 약 30%에 달했다. / 비알코리아 제공
<표>배스킨라빈스 월별 맛 인기순위. 최근 두 달간 톱5에 든 맛은 같았다. 이들 매출 비중이 약 30%에 달했다. / 비알코리아 제공
사람들이 남 먼저 찾는 맛도 비슷했습니다. 최근 두 달간 소비자들이 고른 톱5 맛은 똑같았답니다. 인기순위 표를 보세요. 5월 순위 1·2위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2’와 ‘엄마는 외계인’만 6월 들어 바뀌었고 3~5위는 그대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맛도 역시나 순위권에 들어가 있네요.

◆ '골라먹는 재미' 정말 원하나요?

단순한 취향과 습관의 문제 같지만 여기엔 나름의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매번 색다른 맛을 골라먹는 수고로움보다 예상 가능한 맛을 택하는 선호도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죠. 뇌공학에선 이를 보상(reward)과 습관(habit) 시스템으로 풀이합니다.

31가지 맛을 일일이 탐색·비교하는 작업(exploration)을 통해 의외의 선택에서 ‘인생 최고의 맛’을 만날 수도 있어요. 골라먹는 재미의 핵심은 이같은 ‘보상’ 시스템입니다. 반면 늘 먹는 맛을 택하는 작업(exploitation)에선 이런 뜻밖의 보상을 얻기는 어렵죠. 대신 별다른 고민 없이 선택해도 비교적 괜찮은 ‘가성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민이라는 추상적 용어를 ‘뇌의 에너지를 쓰는 활동’으로 바꿔볼게요. 보상 시스템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습관 시스템은 그렇지 않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일상적인 일에 주로 적용돼요. 매번 점심으로 뭐 먹을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는 않잖아요.

두 가지 시스템은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어요. 이렇게 보면 보상과 습관 시스템은 뇌의 에너지를 어디에 쏟느냐,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결과를 얻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겠지요. 미식가에게는 점심 메뉴가 아주 중요한 문제일 테니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겠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다다익선? 과유불급! 선택의 과학

과연 인간은 다양한 선택권을 원할까요?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합리적으로 비교·판단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것이란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이 경우 선택권은 많을수록 좋아요. 30가지 넘는 맛의 아이스크림은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앞서 뇌의 보상과 습관 시스템을 얘기했는데요. 결국 인간 인지능력의 한계와 선택 상황에서의 기회비용 문제, 두 가지 이유가 큽니다. 무한정의 선택권이 좋지만은 않다는 거죠. 인간은 컴퓨터와 다른 종류의 합리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른바 ‘선택의 과유불급론’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선택권을 제시하면 선택의지 자체를 잃어버린다는 내용이죠.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결정장애’와도 맥이 닿습니다. 이희숙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람의 인지능력은 한계가 있어서 무한정에 가까운 선택권이 제공되면 소비자 정보의 과부하를 초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해외 초콜릿 제품 킷캣은 다크맛과 오렌지크림맛으로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어요. 탄력 받은 킷캣은 20가지가 넘는 다양한 맛의 신제품을 쏟아냈지만 소비자 반응은 신통찮았습니다. 늘어난 경우의 수가 오히려 시장에서 외면 받은 케이스입니다.

따라서 빅데이터 시대가 될수록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이 중요해지겠지요.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일 수도 있지”라는 노랫말처럼, 너무 많은 선택권은 포기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원하면서도 익숙한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인간의 습성은 형성돼 있으니까요.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