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페이 사용할 수 없나요? 지갑 안 가져 왔는데….”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근처 스타벅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삼성 직원들은 대부분 삼성페이를 사용하지만 이들이 즐겨찾는 스타벅스에서는 삼성페이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이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스타벅스 등 자사 사업장에서 삼성페이 사용을 막고 있어서다.
모바일 결제로 손잡은 삼성-신세계…'면세점 갈등'도 풀리나
지난해 호텔신라의 면세점 사업 확대로 불거진 삼성과 신세계의 갈등은 상대 기업 서비스를 자사 사업장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두 그룹은 사업상 이득은 보지 못한 채 소비자 불만만 키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삼성과 신세계가 최근 삼성페이를 신세계 사업장에서 쓸 수 있게 하기로 합의한 까닭이다.

신세계는 지난해 호텔신라의 면세점 사업 확대를 일종의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신세계 측은 “유통업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신세계 쪽에 맡긴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호텔신라로서는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면세점 사업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지난해 7월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 합작사인 HDC신라면세점이 신세계 등을 제치고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면서 두 그룹의 갈등은 격해졌다. 지난해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야심작’인 삼성페이 서비스가 출시됐지만, 신세계는 자사 매장에서의 사용을 차단했다. 이에 삼성은 지난 5년간 신세계에 맡긴 임직원 쇼핑몰 운영을 G마켓에 넘겼다. 신세계는 신세계 상품권을 신라호텔, 에버랜드 등 삼성 사업장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두 그룹은 이 같은 조치들에 대해 ‘사업적 판단’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소비자 편익은 고려하지 않은 재벌가의 감정 싸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두 그룹에도 득될 게 없었다. 삼성페이는 출시 1년 만에 사용자 300만명, 누적 결제액 1조5000억원을 넘을 정도로 순항하고 있다. 신세계 입장에서는 삼성페이를 쓰는 소비자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점점 커지는 모바일 페이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삼성페이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는 삼성 입장에서도 신세계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번 합의가 두 그룹 간 ‘화해’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직접 만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합의도 일단은 사업적으로만 판단한 결과”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단 대화의 물꼬가 트인 만큼 조만간 해묵은 감정도 정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