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결국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자리를 잃을 처지가 됐다. 37억달러(약 4조3400억원)의 분담금을 내기로 한 한국이 중국 주도의 AIIB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AIIB는 8일 홍기택 AIIB 부총재가 맡아온 최고위험책임자(CRO) 직위를 국장급으로 격하시켜 새로 인선한다고 공고했다. 대신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를 부총재직으로 새로 뽑는다고 밝혔다. 홍 부총재는 지난달 돌연 휴직계를 제출하고 잠적한 상태다.
한국, '중국 주도' AIIB 부총재직 상실
앞서 AIIB는 지난달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인 프랑스의 티에리 드 롱게마르를 CFO로 내정해 9월부터 근무한다고 공표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AIIB보다 큰 국제기구인 ADB 부총재를 영입하면서 당연히 부총재직 이상의 자리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AIIB 지분율은 3.44%로 한국(3.81%)보다 적은 7위 수준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홍기택 부총재가 맡던 자리(CRO)를 국장급으로 강등하고,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부총재급으로 승격해 후임자를 새로 뽑기로 하면서 한국이 차지했던 부총재 자리는 사실상 사라졌다. 정부 관계자도 “신임 부총재 자리가 이미 프랑스로 내정된 상태”라며 “한국인 부총재 자리는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AIIB 지분율은 중국(30.34%)이 가장 많다. 다음은 인도(8.52%) 러시아(6.66%) 독일(4.57%) 한국(3.81%) 호주(3.76%) 프랑스(3.44%) 인도네시아(3.42%) 브라질(3.24%) 영국(3.11%) 순이다. 중국인 진리췬 총재가 AIIB를 이끌고 인도 독일 한국 인도네시아 영국 출신이 부총재직을 맡고 있다.

부총재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한국의 AIIB 내 위상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의 AIIB 분담금은 37억달러(약 4조34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부총재직을 잃게 되면서 AIIB 의사결정에 한국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AIIB는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교통 통신 에너지 농촌개발 수자원 등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는 국제기구다.

출범 첫해인 올해는 다른 개발은행과의 협조 융자나 공공부문 중심의 프로젝트로 인프라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예상 투자(대출) 규모는 최소 5억달러에서 최대 12억달러다. 정부 관계자는 “건설 플랜트 통신 등에 강점을 가진 한국 기업이 AIIB를 통해 사업 기회를 많이 가질 것으로 기대해왔는데 부총재직이 날아가 입지가 좁아졌다”고 말했다.

AIIB 부총재직 상실로 한국의 국제금융기구 부총재 자리는 또다시 사라질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한국 정부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 자리에 도전했지만 호주에 내줬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