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 드라마 ‘운빨 로맨스’의 한 장면.
MBC 수목 드라마 ‘운빨 로맨스’의 한 장면.
“당신이란 여자, 아무리 더하기 빼기 해도 안 맞고, 어떤 함수로도 풀리지 않아. 버그 맞아. 하지만 그 버그 잡고 싶지 않아. 계속 내 머릿속에 있으면 좋겠어.”

류준열이 새벽에 불쑥 찾아와 황정음에게 하는 고백은 독특하다. 그가 선택한 단어와 문장은 일상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정보기술(IT) 천재’로 게임회사 전문경영인 수호 역이란 사실을 안다면 수긍이 간다. 수호는 감성보다 이성이 과도하게 발달한 캐릭터다.

황정음이 맡은 보늬 역은 정반대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살리려면 호랑이띠 남자와 동침해야 한다는 점쟁이의 말대로 호랑이띠 남자를 찾아 나설 정도로 미신을 맹신한다. 웬만한 부적쯤은 척척 그려낼 만큼 도사(?)가 됐다.

MBC 수목 드라마 ‘운빨 로맨스’(극본 최윤교, 연출 김경희)에선 이처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돋보인다. ‘로코퀸’ 황정음과 신예 류준열의 화학작용이 드라마를 끌어가는 동인이다. 김달님 작가의 동명 웹툰을 변형해 제작한 이 드라마는 게임회사 오너로 정상훈을 등장시켜 재벌과 신데렐라 구도를 벗어나면서 ‘IT 천재’ 류준열의 개성이 살아났다.

합리성만 고집하는 그는 황정음이 사무실에 붙여준 부적들을 일일이 떼어내 버린다. 그러나 나중에는 황정음이 쾌유를 빌며 자신의 손목에 써준 부적에 대해 “당신과 지냈던 그날 밤이 지워지는 것 같아서 못 지우겠다”고 말한다. 일밖에 모르는 악덕 경영자였던 그는 사랑에 빠지면서 직원들과 공감대를 넓혀가는 경영자로 성장해 간다.

황정음은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판타지적 요소가 더해진 캐릭터다. 매일 ‘오늘의 운세’를 정독하면서 수시로 소금을 뿌려 액막이를 한다. 자신의 박복(薄福)함으로 주변 사람들이 불행을 겪는다고 믿고, 늘 부적을 그리고 기도한다. 그런 그녀에게 두 남자의 마음이 쏠린다. 류준열과 테니스 스타 역의 이수혁이다.

황정음이 둘뿐 아니라 시청자의 마음까지 얻는 이유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을 사는 우리 자신과 닮아 있는 캐릭터여서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황정음의 맹목성이 해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악당이 없다는 것. 류준열과 황정음 사이에 끼어든 이청아와 이수혁도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음모와 악행을 저지르는 타입은 아니다. 특급 테니스 스타와 매니저 역인 이수혁과 이청아는 외적 조건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랑의 게임에서 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상기시켜 준다. 류준열의 아버지가 술김에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든다고 해서 악당은 아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용서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김경희 PD는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미약한 존재”라며 “이 때문에 정반대의 인생을 살아온 남녀가 서로 믿고 사랑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