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은 7일 무역투자 진흥회의에서 "위기를 극복하려면 '더 좋은 쥐덫'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 한경 DB
박근혜 대통령은 7일 무역투자 진흥회의에서 "위기를 극복하려면 '더 좋은 쥐덫'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난데없이 쥐덫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얼굴)이 ‘쥐덫론’을 펼친 탓입니다. 지난 7일 열린 무역투자 진흥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미국 울워스라는 회사에서 만든 쥐덫은 한 번 걸린 쥐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던 데다 위생적인 플라스틱으로 예쁘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새롭고 성능 좋은 제품을 개발해 성공한 사례로 소개한 것이죠.

이른바 ‘더 좋은 쥐덫(상품)’의 비유는 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다음 글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이 더 좋은 책을 쓰고 더 좋은 설교를 하고 더 좋은 쥐덫을 만들면 외딴 숲속 한가운데 집을 짓고 살아도 세상 사람들이 당신 집 문앞까지 반들반들하게 길을 다져 놓을 것이다.”

곧장 논란이 일었습니다. 비유가 잘못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케팅 이론에서 ‘더 좋은 쥐덫의 오류’는 성능에만 집중한 제품이 시장에서 외면 받는 경우를 가리킨다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박 대통령이 소개한 좋은 쥐덫은, 실제로는 소비자들이 거부감 때문에 구식 쥐덫을 더 많이 사면서 실패한 상품이 됐다고 합니다.

쥐덫의 오류.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과문한 탓인지, 전공자가 아니어선지, 솔직히 저는 몰랐습니다. 대통령이 꼭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문 영역에서 정확한 개념을 파악해 잘 실천하면 되는 사안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딴 데 있습니다. 대통령의 오류를 꼬집어 말하면 불편해지는 분위기 말입니다. ‘쥐덫의 유탄’을 맞은 곳이 있죠. 한 대기업 계열사는 지난해 3월 공식 블로그에 쥐덫의 오류를 가리켜 “제품 중심적 사고의 오류”라고 소개한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멀쩡한 글을 삭제했습니다.

무려 1년 4개월 전에 이번 일을 예상하고 쥐덫의 오류를 언급하지는 않았겠지요. 누가 봐도 문제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내렸습니다. 외압이나 정치적 해석과는 무관하다고 회사 측은 해명했습니다. 그럴 겁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알아서 자기검열 하는 경직된 사회가 됐다는 방증이라서 그렇습니다.

학계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쥐덫의 오류에 대해 전문가인 대학 교수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대부분 언급을 꺼렸습니다. 굳이 언급했다가 책잡힐까 곤란해 하는 뉘앙스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기업과 대학이 정부 심기를 거스를까봐 눈치 보는 이 상황이 바로 박근혜 정부가 정상화하겠다는 ‘비정상’ 아닐까요.

지나친 권위를 내려놓는 바로 그 자리에 토론의 공간은 열립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틀렸다고만 볼 이유도 없습니다. 한 경영학 교수는 “숲속 한가운데 살아도 소비자가 올 만큼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고, 소비자 반응을 세밀하게 체크해 ‘아무도 사지 않는 최고의 상품’을 피해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토론하고 소통하면서 창조경제 ‘방법론’을 논의해 최적의 대안을 찾아갈 수 있을 겁니다. 제품 성능 개발을 우선할지, 아니면 시장 친화적 제품 생산에 주력할지 말이죠. 모든 분야에 정해진 답이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성능이 답이고 때로는 시장이 중요하겠지요.

우리는 지금 그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좋은 대안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실험용 쥐를 풀어놔 가설을 검증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나옵니다. 수없이 실험하고 토론해도 모자란 판국에 오히려 두 겹, 세 겹 ‘쥐덫’을 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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