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하는 A씨는 국회의원 보좌관 B씨, 경제부처 사무관 C씨와 주기적으로 만나 저녁식사를 해 왔다. 세 사람은 대학 동기로 절친한 사이다. 술값은 모두 A씨가 냈지만, 그가 나머지 사람들에게 어떤 청탁을 한 적은 없다. A씨는 한 해 통틀어 여섯 차례에 걸쳐 480만원을 지출했다.

이때 A씨가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을 위반한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선 접대비부터 계산해야 한다. B씨, C씨의 접대비는 480만원을 세 명으로 나눈 160만원이다. 공직자가 받은 금품 등이 한 해 300만원 이하인 경우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대법원은 직무관련성 범위를 넓게 잡고 있다. 예컨대 B씨가 A씨 회사 업무와 관련 있는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이고, C씨는 A씨 회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법안의 예산 책정 등을 담당하는 부처 사무관이라면 이들로부터 듣게 된 국회 입법 동향과 정부의 예산편성 이슈 등은 직무관련성이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대표변호사 김성진)이 6일 서울 역삼동에서 오는 9월28일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기업의 대관업무 방식과 행동 전략 등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김영란법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350여명의 기업 관계자가 참석해 강당을 꽉 채웠다.

발제자로 나선 감사원 출신 성용락 태평양 고문은 “김영란법으로 기업 대관업무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기업 내부자료가 감사원 감사, 세무당국의 세무조사, 경찰·검사의 수사 과정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기업에서 관행적으로 작성해온 대외활동 보고서, 법인카드 내역 등도 향후 회사의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질문·답변시간에는 “김영란법 위반으로 법인이 과태료를 부과받으면 해당 직원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송진욱 태평양 변호사는 “배상을 청구하려면 회사의 명확한 행동강령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추후 소송으로 갔을 때 패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