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조승우(왼쪽)와 전미도.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조승우(왼쪽)와 전미도.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영국 런던 빈민가다. 가난한 하층민들이 도시로 모여들어 하수구 같은 삶을 살았다. 권력자들은 불법과 폭력을 동원해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뮤지컬 작사·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은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잔혹한 이발사 스위니 토드를 시대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손드하임의 음악은 치밀하게 계산된 퍼즐 같은 운율과 말장난, 상징성으로 가득하다. 서로 충돌하는 듯한 불협화음을 통해 조여오는 긴장감이 묘미다. 처자식을 잃고 추방됐다가 돌아와 복수를 꿈꾸는 토드와 그를 돕는 파이가게 주인 러빗 부인의 ‘계산된 불협화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2일 두 차례 열린 공연에서 토드와 러빗 부인 역으로 번갈아 출연한 조승우·전미도와 양준모·옥주현의 연기를 비교해 봤다.

이번 공연은 전미도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만했다. “그대와 나, 사랑스러운 커플~”이라고 노래를 부르며 조승우에게 들이대는 전미도는 영락없는 ‘주책바가지’ 러빗 부인이다. 뮤지컬 무대에서 주로 연약하고 순박한 역할을 맡아 보여주지 못하던 끼를 물 만난 고기처럼 유감없이 발산한다. 말하듯 노래하는 조승우와 완급 조절이 뛰어난 전미도는 섬세한 연기력과 노래로 오래된 부부 같은 찰떡 호흡을 보여준다.

조승우는 굵고 낮은 목소리로 분노를 꾹꾹 눌러담았다가, 중간중간 블랙 유머를 선보이고, 극의 절정에선 돌변하는 눈빛과 카리스마로 광기를 폭발시키며 관중을 압도한다. 그의 출세작 ‘지킬 앤 하이드’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토드가 가진 상실감과 집착, 분노를 치밀하게 따라가는 손드하임의 선율과 조승우의 연기가 시너지를 발휘한다.

양준모와 옥주현은 풍부한 성량을 자랑한다. 성악가 출신 배우 양준모는 강력한 베이스 바리톤을 기준으로 음악을 만든 손드하임의 작품에 걸맞은 소리를 가졌다. 토드는 터빈 판사를 죽이려고 할 때 자신의 딸 조안나를 그리며 아름답고 섬세한 노래를 부른다. 이 곡에선 조승우보다 더 강력한 부성애가 느껴졌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으로 출연할 때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옥주현도 손드하임의 음악을 거의 빈틈없이 소화해낸다. 무대에서 늘 카리스마 있는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던 그는 코믹 연기로 변신을 시도했다. 가끔 지나치게 해맑고 과장된 연기가 아쉬움을 남겼다. 무대에는 하얀 3층 구조물이 전부다. 식사가 이뤄지는 1층 주방(삶)과 살인을 저지르는 2층 이발소(죽음)를 한 덩어리로 묶어놓고,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내려간 시체가 주방에서 파이가 돼 나오는 무대 구조는 기계적으로 순환하는 산업혁명의 냉혹한 특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 오는 10월3일까지, 6만~14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