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의 허와 실

[뉴스의 맥] 최저임금 대폭 인상, 340만 저임 근로자 일자리 위협한다
2017년 최저임금 협상이 최종 시한을 넘기며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노동계는 현재 최저임금인 시간당 6030원 대비 66% 오른 1만원 인상안을 고수하고 있고, 경영계는 올해 시급인 6030원 동결안을 내놓고 격한 대립을 빚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8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논의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으로 모든 근로자를 생활고에서 구제해 줄 듯 홍보하고 있다. 정치권도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수준만 차이가 날 뿐 모두 최저임금의 획기적인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면 가계로 돈이 흘러들어갈 것이고, 1인당 실질소득이 크게 늘면서 소비가 증가해 내수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란 논리다. 여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8000~9000원까지 올리겠다고 하고 더불어민주당은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한다. 국민의당도 최저임금을 근로자 평균 임금의 50%까지 올리는 것을 추진할 예정이다. 각 당의 공약이 현실화되면 시간당 6030원에서 앞으로 20대 국회 임기 동안 연 10~18%가량 지속적으로 인상돼야 한다.
[뉴스의 맥] 최저임금 대폭 인상, 340만 저임 근로자 일자리 위협한다
최저임금 못 받는 근로자 늘어

이처럼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더라도 고용에는 큰 문제가 없을까. 일부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저임금 근로자 집단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유의미한 고용 감소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한 가지 고려하지 않은 것이 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를수록 최저임금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근로자가 늘어나고 이 중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근로자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우선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근로자가 크게 증가한다. 그런데 통계상으로 이런 근로자들은 여전히 취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없는 것처럼 나타난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에게 제대로 도움이 될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살펴봐야 한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근로자 비율을 ‘최저임금 미만율’이라고 한다. 한국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2001년 57만7000명, 4.3%에서 2015년 222만2000명, 11.5%로 급증했다. 즉, 최저임금을 인상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할 근로자가 200만명이 넘는다는 얘기고, 이는 최저임금 인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산업별로 보면 더 심각하다.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분석해보면 영세업체가 많은 부동산 및 임대업이나 숙박 및 음식점업은 전체 근로자 139만명 중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근로자가 41만명이 넘어 최저임금 미만율이 30%에 달한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된다면 현실은 더욱 암울해진다. 같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숙박 및 음식점업에서는 전체 근로자의 70% 이상이, 부동산 및 임대업에서도 60% 이상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최저임금 인상이 정치권이나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제 기능을 할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과도한 인상이 저소득 근로자의 고용만 불안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보호 필요한 근로자만 불안

임금수준이 인상될 최저임금 이하에 있는 근로자 비중을 ‘최저임금 영향률’이라 부른다. 여기에 해당하는 근로자 중 현재 최저임금과 인상될 최저임금 사이에 있는 근로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런 근로자가 많을수록 최저임금이 일반 근로자 임금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고 고용 불안을 느끼는 근로자가 많아진다. 한국의 2001년 해당 근로자 규모는 14만1000명으로 영향률은 2.1%였다. 그러나 2003년에서 2010년 새 급격히 증가해 2010년에는 256만6000명, 15.9%를 기록했다. 그 이후 잠시 횡보를 거듭하다가 올해에는 최저임금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근로자가 342만명을 기록했고 영향률도 18.2%까지 올라갔다. 최저임금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도 영향률은 11.1%에 그친다. 미국은 3.9%에 불과하고 영국은 5.2%, 일본도 7.3%에 머물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지난 10여년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인상됐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영향률이 높은 상황이라면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최저임금 미만으로 임금을 받을 근로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혹시 정부가 최저임금 미만은 받지 못하도록 강제한다면 어떨까. 영세 중소기업, 자영업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또 능력이 있어 인상된 최저임금을 적용받아도 문제가 없는 근로자들은 다행이지만 340만명이 넘는 해당 근로자 중 능력이 낮은 사람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2007년부터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시작한 경비원 등 감시·단속 근로자의 경우를 살펴본 연구를 보면, 수도권 지역 132개 단지 아파트 경비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자 고용은 3.5~4.1% 감소했고 근로시간도 13.5%나 줄었다. 이 중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누구일까. 경비원 중 가장 나이가 많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부터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사람들이 근로자 보호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은 이름 그대로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소득분배도 해결하고 내수도 진작해야 한다는 주장은 최저임금에 대한 환상에 불과하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1998년 시간당 1485원에서 2016년 6030원까지 빠른 속도로 인상돼 현재 1998년 대비 네 배가 넘는다.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1개국 중 여덟 번째다. 반면 미국은 1998년 대비 1.4배 수준에 머물고 있다. 왜 미국이 1997년 이후 최저임금을 10년간 동결했고 2007년 이후 3회 인상한 뒤 지금까지 동결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분배·내수진작 기능 요구는 무리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최저임금 미만율이나 영향률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을 물가상승률 정도만 인상하고 그 대신 최저임금이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최저임금의 제 기능을 복원하는 방법이다. 최저임금에 생계 보장이나 분배, 나아가 내수진작 기능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생계 보장은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근로장려세로, 소득분배는 분배정책으로, 내수진작은 소비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변양규 <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