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국세청과 복지부를 통합?
취직을 못해 카페를 전전하는 청년들을 봐야 하는 일은 괴롭다. 저임금과 불완전 취업에 악전고투하는 젊은이를 보는 것은 더 괴롭다. 그들의 어깨는 처지고 인생은 소모돼 간다. 대졸 실업이라고는 하지만 할 수 있는 것도 의욕도 없다.

이때 정치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저임은 자본 착취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 주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국회의원 68명이 종전보다 다소 완화된 최저임금 관련 두 가지 요구안을 발표했다. 하나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급 1만원으로 올리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영세사업자와 영세기업이 떠안게 될 추가적 부담을 덜기 위한 정책을 즉시 도입하라는 것이다.

그럴싸한가? 환영이라고? 바보라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언어가 아름답다고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연애의 말들은 달콤하게 귓전을 울리지만, 생활의 말들은 투박해서 듣기에도 거칠다. 하물며 최저임금 동결 주장은 투박하고 거친 정도를 지나 위험하기까지 하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꼭 그만큼 실업자가 늘어나고 고용주는 폐업을 하거나 불법 고용의 전과자가 된다는 현실을 말해 주는 것도 그렇다.

노무현식 어법 즉, “그러면 하루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점심 한 끼 식사값 정도밖에 못 받는다는 말이냐”는 반론이 바로 튀어나온다. 우리는 이 말을 충분히 반격할 수 있다. 입이 없어서 거친 말을 못하는 사람은 없다. 최저임금은 노동시장 진입로와 밑바닥층에 형성돼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이야기라도 듣는 자를 괴롭게 만든다. 최저임금조차 못 받고 있는 근로자 숫자는 222만명이다. 전체 근로자의 무려 11.5%다. 2001년 57만7000명(4.3%)에 비기면 네 배나 늘어났다. 임금이 하락해서가 아니다. 최저임금이 277%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나 많이 올랐다는 것이 겨우 시급 6030원이다. 한심한가? 그러나 더 한심한 진실은 따로 있다.

한국의 최저임금에는 상여금이나 숙박지원금 등이 모두 제외돼 있다. 실제 연봉은 4000만원이지만 통계로는 최저임금자에 포함되는 그런 문제도 많다. 실제 임금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통계상 최저임금 근로자 숫자부터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차상위 근로자들도 치받히는 영향을 받는다. 이 인구는 340만명으로 추산된다. 근 500만명이 최저임금으로부터 직간접 영향을 받는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자영업 등 저임부문의 임금이 따라 올라가주면 정말 좋겠다. 그런데 임금은 누가 주나.

이것이 한심한 진실이다. 최저임금조차 못 주고 있는 수십만 영세 고용주들이 실은 더 문제다. 한 달에 100만원 이하를 겨우 버는 영세사업자들은 최저임금이 여기서 더 오르면 이제 불법으로 고용하다 전과자가 되느냐 아니면 폐업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아마 후자를 택할 것이다. 최저임금을 시급 1만원으로 올리면 사업 포기가 줄을 이을 것이고, 그 결과로 고용 감소는 승수적으로 늘어난다. 60세 정년 연장이라는 일격을 받아 12.5%까지 솟구친 청년실업률은, 2020년이면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의 추가적 일격을 받으면서 20%로 치솟을 수도 있다. 바보는 항상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한다.

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정부는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용자에게 형벌 아닌 과태료를 매기기로 최근 결정했다. 그나마의 큰 위로다. 미세조정이 때론 대규모 조정보다 효과적이다. 최저임금을 연령별·지역별로 미세하게 차등화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또 다른 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다. 근로소득에 연계한 과세지원 제도(EITC)를 확대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소득기준을 정한 다음 근로와 복지를 통합 운영하면 낭비도 줄이고 일하는 복지라는 체제 건강성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경제적 자유의 원칙을 강하게 주장하는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큰 반론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복지제도는 간소화되고 명확해진다. 수입부서인 국세청과 지출부서인 보건복지부를 통합하는 것은 아주 그럴싸한 아이디어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