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주최로 지난달 30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제기구 채용설명회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인사담당자가 채용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공태윤 기자
외교부 주최로 지난달 30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제기구 채용설명회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인사담당자가 채용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공태윤 기자
“유창한 외국어 실력보다 뚜렷한 소명의식이 더 중요합니다.”

유엔 산하기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간부들이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에게 건넨 조언이다. 외교부는 6월30일~7월1일 서울시청과 부산시청에서 각각 국제기구 진출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장에선 국제기구 진출 희망자를 위해 '국제기구 진출 가이드북'을 배포했다. 이 책에서 한국인 간부들은 소명의식, 외국어 실력 외에 풍부한 국제경험과 업무 전문성, 글로벌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 등을 국제기구에 진출할수 있었던 비결로 꼽았다.

강경화 유엔 인도지원조정실(OCHA) 사무차장보는 △좋은 책을 많이 읽을 것 △논리적 사고와 작문연습을 많이 할 것 △어려운 결정의 순간을 피하지 말 것 △확실한 반대 증거가 없는 한 모든 사람을 믿을 것 △감정적인 성숙함과 지적인 솔직함을 지닐 것을 조언했다. 이장근 외교부 심의관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영어가 필수지만 최근 아랍어 구사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유니세프, 안정적 삶과 거리 멀어”

[취업에 강한 신문 한경 JOB] "유엔은 소명의식으로 일하는 곳…고연봉 원한다면 다른 길 가야"
김경선 유엔아동기금(unicef) 청소년프로그램 총괄담당자는 “유니세프가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헌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안정적인 삶, 명예, 연봉이 중요한 가치라면 과연 국제기구가 나와 맞는 곳일까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서 근무 중인 박경란 구호물자 담당관은 “3D(위험하고(dangerous), 어렵고(difficult), 더러운(dirty) 일)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쟁 중인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 국민에게 식량을 지원하고 짐바브웨, 콜롬비아, 필리핀 남섬 등에서 구호물자와 생필품을 전달하는 활동을 해온 그는 “3D에 직면할 준비를 하고 입사를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근무 중 게릴라 단체를 만나 협상하기도 했으며, 구호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6시간 무거운 짐을 메고 산꼭대기에 오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근무하는 이수진 씨는 우물 파기, 화장실 설치, 옷과 비누 만들기 등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직접 해야 했다며 해당 국가에 대한 역사, 문화지식도 중요하지만 작은 일상의 경험과 남에게 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고 말했다. 홍정환 OCHA 정보시스템 담당관은 학창시절 해외봉사, 비정부기구(NGO), 인턴 활동 등을 통해 익숙지 않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음보다 의사표현 어학능력 필요”

유엔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6개의 공식언어를 쓰고 있다. 서석민 유엔본부 공보관은 “거의 모든 국제기구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발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며 “발음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을 키울 것”을 당부했다.

의사소통 능력뿐 아니라 작문,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필요하다. 하경애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집행위원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토론을 거듭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상대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와 상대를 설득하는 논리력, 효과적인 발표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구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UN ESCAP) 경제담당관은 각종 유엔 공문서, 연감 편찬, 장문의 리서치 자료 등 국제적 수준의 보고서 작성 능력도 언어구사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 분야 전문성이 있다면 국제기구 진출에 더 유리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해 20년간 화학특기자로 군복무를 한 김습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사찰팀장은 “국제기구는 전문성이 있는 경력자를 상시채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직에 충실하면서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김의기 세계무역기구(WTO) 심의관은 “WTO는 국제통상법을 공부한 변호사가 가장 진출하기 쉬운 곳”이라며 “WTO는 국가별 할당제가 없고, 철저한 능력주의 선발 시스템이기에 실력만 있다면 입사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홍정환 OCHA 정보시스템 담당관도 “대학 졸업 후 국제기구만 준비하기보다 정부, 기업 등에서 실무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전했다. 최근 유엔 채용 사이트에 정보기술(IT) 이공계 경력자 채용이 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포용력도 강조했다. 이선경 아시아유럽재단 공공보건 담당관은 “균형 잡힌 가치관과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은 국제기구 일원으로서 화룡점정과 같은 요소”라고 강조했다. 강승연 유니세프 내부감사는 “예기치 못한 열악한 상황에 대응하는 법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이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토양이 됐다”고 전했다. 서석민 공보관은 “이 일은 특정 나라가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