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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토지개혁 '무상몰수 무상분배'는 거짓, 좌익 반란 이겨낸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로

입력 2016-07-01 16:22:32 | 수정 2016-07-01 16:22:32 | 지면정보 2016-07-04 S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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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26)
냉전의 산물 ‘분단’

경기 파주에 있는 경의선 도라산역은 북쪽을 향한 남한의 마지막 역이다. 한반도의 분단 상태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기사 이미지 보기

경기 파주에 있는 경의선 도라산역은 북쪽을 향한 남한의 마지막 역이다. 한반도의 분단 상태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1948년은 우리 민족에 영광스러운 해인 동시에 안타까운 일이 일어난 해입니다. 그해, 자랑스럽고 번영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대한민국과 적대적인 정부가 세워졌지요. 이로써 통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한반도는 해방되자마자 38선으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민족은 곧 통일이 될 것이라 기대했지요. 그런데 남한과 북한에 서로 다른 체제의 정부가 들어서고 분단 70년이 지나도록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체 누구 때문에 한반도가 분단돼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한반도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결과물입니다. 극심한 이념의 대립을 겪던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눠 점령할 때부터 분단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었죠. 미국은 당연히 한반도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미국 같은 국가가 만들어지기 원했습니다. 소련도 한반도에 친소적 공산주의 국가를 만드는 것을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두 나라 중 더 먼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 나라는 소련이었습니다. 소련의 스탈린은 1945년 9월에 이미 북한에 독자적인 정권을 세우라고 지령을 내렸습니다.

분단의 책임이 두 강대국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강대국의 분할 점령을 가져온 것은 일제 강점기이지요. 일제 강점기를 불러온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또 일제 강점기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도 우리 민족은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습니다. 나라 밖에서 애썼던 독립 세력이 힘을 모아 연합군으로 참전해 승리한 뒤 해방 조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면 분단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건국 때 우리 국민소득 35달러

빨치산으로부터 충남 보령을 방어하기 위해 지은 보령 경찰서의망루. 높이는 약 12m며 안에서 밖으로 총을 쏠 수 있도록 22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기사 이미지 보기

빨치산으로부터 충남 보령을 방어하기 위해 지은 보령 경찰서의망루. 높이는 약 12m며 안에서 밖으로 총을 쏠 수 있도록 22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해방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민족에는 통일 국가를 세울 기회가 다시 주어졌죠. 하지만 그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미 군정에 협조했습니다. 하지만 계급 독재와 공산주의가 옳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소련을 지지하고 북한이 나라를 세우는 데 참여했습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느 쪽이 더 우월한 체제인지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억압과 빈곤의 늪에 빠진 공산주의의 실상을 알게 됐기 때문이죠. 그러나 70년 전에는 어느 체제가 마땅한 것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당시 수많은 국민이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러던 중 1946년 2월 북한에서 ‘무상 몰수와 무상 분배’의 토지 개혁을 시행했습니다.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재산을 무상으로 몰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무상 분배라고 선전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땅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지요. 공산주의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과 상의 한번 하지 않고 토지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이는 한반도를 공산 국가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메시지였죠. 이후 북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완전히 추방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 국가를 만들기 위해 타협과 절충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분단이 완전히 굳어지게 만든 것은 북한 정권과 그를 부추긴 남한의 좌익 세력이었습니다.

건국 직후 대한민국은 가난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5달러였고 국민의 78%가 글을 읽을 줄 몰랐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는 정부 예산의 5% 정도밖에 충당할 수 없었고 나머지는 미국의 원조나 다른 나라에서 빌려온 돈으로 메우는 형편이었죠. 그런데 좌우 대립은 극심했고 남한의 공산당인 남로당 세력은 급속하게 커졌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질서를 잡아갈 군대와 경찰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남로당 세력이 반란 획책

해방 직후 미 군정에 의해 만들어진 국방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가 건국 후 육군과 해군으로 이름을 바꿔 대한민국의 국군이 됐습니다. 그런데 초창기 국군에는 문제가 있었지요. 좌익 분자들이 국군 내부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혼란할 때 군인을 모집했기 때문에 신원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긴 일입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두 달 만인 1948년 10월 군인들의 반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정부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전남 여수에 있던 국군 제14연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14연대 내에 있던 남로당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고 수백 명의 경찰관과 우익 인사와 그 가족들을 살해했습니다.

정부는 1주일 만에 반란군을 진압했습니다. 이에 반란군들과 일부 좌익 인사들은 지리산 등으로 도망가 빨치산이 되었습니다. 빨치산은 비정규군을 뜻하는 ‘파르티잔’이라는 러시아어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6·25전쟁 전까지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던 공산 유격대원을 일컫는 말로 쓰였죠. 남로당의 지시를 받은 빨치산 때문에 남한의 수많은 산악지대는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인 상태가 돼버렸습니다.

글= 황인희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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