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왕' 꿈꾸는 딸들의 전성시대
패션업계에 2세 여성 경영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세정그룹, 패션그룹형지, 엠티콜렉션, 영원무역 등에서 창업자의 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마케팅, 디자인, 기획 등의 부서에서 경영수업을 마친 이들이 본격적인 책임경영을 시작한 것이다.

세정그룹은 박이라 세정 상무이사를 부사장으로 임명했다고 1일 발표했다. 박 부사장은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3녀로 세정 부사장과 인디안 브랜드를 운영하는 세정과미래 대표이사를 겸직한다. 그는 미국에서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뒤 2005년 세정에 입사했다. 비서실에서 근무를 시작해 브랜드 전략실장 등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2006년 그룹 계열사인 세정과미래 총괄이사에 올랐고, 2007년 세정과미래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같은 해 캐주얼 브랜드 크리스크리스티 출시를 주도했다. 이때 기획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그룹의 핵심인 웰메이드 사업을 맡으며 경영전선에 모습을 나타냈다. 같은 해 주얼리 브랜드 디디에두보를 출시했다. 지난 4월 크리스크리스티를 중국 쑤저우 메이뤄백화점에 입점시키면서 세정그룹의 중국 진출을 이끌었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녀인 최혜원 대표도 패션업계 2세 여성 경영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룹에서 7년간 경영수업을 받은 그는 그룹을 이끌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달 16일 형지I&C 대표로 임명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2008년 패션그룹형지에 입사해 글로벌 소싱 구매팀에서 근무를 시작한 최 대표는 크로커다일 상품기획실, 패션그룹형지 전략기획실장을 거쳤다.

회사 관계자는 “최 대표는 오랜 기간 패션그룹형지가 운영하는 다수의 브랜드를 경험했다”고 전했다. 2014년부터 형지I&C에서 여성복 브랜드 캐리스노트 사업본부장으로 일하며 브랜드를 키웠다. 당시 최 회장이 최 대표의 경영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브랜드를 맡겼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 대표가 브랜드를 맡은 뒤 캐리스노트는 야노 시호를 모델로 내세우고, 스타일링 클래스를 여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다른 업체들의 매출이 감소한 2분기에도 캐리스노트의 매출은 증가했다. 최 대표가 경영진에 합류한 것도 캐리스노트를 성장시킨 실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경영수업 없이 곧장 경영 일선에 나선 2세도 있다. 양두석 엠티콜렉션 회장의 장녀인 양지해 씨는 26세 때인 2004년 회사 대표를 맡았다. 그는 이탈리아 패션스쿨 마랑고니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다. 양 대표가 경영을 맡은 뒤 메트로시티는 빠르게 변했다.

국내 잡화업계에선 이례적으로 대규모 패션쇼를 열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배우 제시카 알바를 모델로 기용했고, 올해 봄여름 시즌에는 유명 모델 바버라 펄빈을 패션쇼 메인모델로 세웠다. 2004년 400억원 정도였던 메트로시티 매출은 작년 1330억원으로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대한민국 20~50대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메트로시티 가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양 대표는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엠티콜렉션의 인사교육시스템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의 세 딸인 성시은 YMSA 이사,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 대표, 성가은 영원아웃도어 상무도 떠오르는 여성 경영인이다. 지난 3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성 대표는 성 회장의 둘째 딸이다. 미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2002년부터 영원무역에서 근무했다. 3녀인 성 상무는 영원아웃도어 전반의 경영을 맡고 있다. 장녀인 성 이사가 몸담은 YMSA는 영원 그룹의 지주사다. 소재와 원단 수출입업을 주로 담당한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