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청은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서울 홍익대 인근 동교동·서교동 주변 상가 500여곳의 임대료를 조사했다. 구청 기획경제국 소속 80여명이 상가를 일일이 방문해 건물주 현황과 보증금, 전·월세, 임대기간 등을 파악했다. 마포구가 대대적으로 임대료를 조사한 것은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과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대한 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구청 리포트] "건물주 어르고 달래라"…구청들 '상인 내몰림' 막기 총력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지역 상권과 주거 환경이 불안정해지자 구청들이 발벗고 나서고 있다. 마포구뿐만 아니라 성동구 중구 도봉구 등은 조례 제정이나 상생협약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상인과 구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지만 과도한 재산권 침해와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대료를 올리지 말아달라’는 구청의 요구에 일부 건물주는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홍대 인근 상가 월세 15% 급등

서울시에선 홍대 근처를 포함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는 곳이 많다. 성수동이나 서촌 경리단길 삼청동 가로수길 등이 대표적이다.

구청들이 상인 보호에 나서는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할수록 지역 상권이 황폐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임대료가 올라 지역에서 오래 생활하던 상인들이 떠나면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면서 개성 없는 상업지구가 되기 쉽다. 이후 유동인구가 줄고 대자본마저 임대료를 못 견디고 떠나면 상권은 몰락한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주요 상권에선 상인들이 매년 임차료 인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홍대입구역 주변에서 8년째 음식점을 하는 이모씨(59)는 임차료 인상폭이 너무 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500만원’이었지만 건물주가 다음달 재계약 때 ‘보증금 2억원에 월세 900만원’을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사실상 임차료가 두 배 오르는 셈”이라며 “쫓겨나야 할 판인데 권리금 받을 시간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마포구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대 주변 상가의 평균 월세는 3.3㎡당 13만원으로 종전 계약 때보다 15% 급등했다. 보증금 부담도 3.3㎡당 193만원으로 3.2% 늘어났다.
연남동 경의선숲길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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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입점 불허 조례 제정도

구청들은 주로 조례를 제정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고 있다. 성동구는 지난해 성수동의 임대료 급등을 막기 위해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만들고 올 들어 전담조직인 ‘지속발전과’를 발족시켰다. 중구도 지난 5월 비슷한 조례를 제정했다. 도봉구는 오는 9월께 조례를 제정·공포할 계획이다. 마포구도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관련 조례를 마련하기로 했다. 조례에는 주민협의체 구성과 임대료 동결을 권장하는 ‘임대·임차인 간 상생협약 체결’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구청이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을 자제시키기 위해 지원책을 내놓기도 했다. 성동구는 지난해 10월부터 성수동 내 임차인·임대인 간 상생협약 체결을 추진해 지금까지 141명의 건물주로부터 참여를 이끌어냈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직원이 건물주를 일일이 만나 장기적으로 임대료 억제가 임대인에게도 유리하다는 점을 설득했다”며 “건물 부지의 지구단위계획 지정 시 용적률을 올려주는 등 ‘당근책’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일정 기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노후 상가 건물주에게 리모델링 보수 비용으로 1000만~3000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올해 시범 도입했다.

하지만 합법적인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성동구가 제정한 조례에는 젠트리피케이션 우려 지역에서 주민협의체가 신규 점포의 진입 여부를 심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주민협의체가 대자본을 앞세운 프랜차이즈 등의 입점을 거부하면 구청장이 해당 업체의 입점을 불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구청이 입점을 불허하면 업체가 소송까지 갈 수도 있지만 공익을 위한 것이어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부 건물주는 구청이 임대료 동결을 압박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성수동 서울숲 인근의 한 건물주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월세를 주변 시세대로 올리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구청이 무리한 선심성 정책을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도심 개발로 낙후 지역에 고급 주거·상업시설이 형성되면서 외지인이 몰리고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과 소상인이 내쫓기는 현상. 국립국어원이 ‘둥지 내몰림’을 쓰자고 제안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