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경찰이 13점 중 4점만 위작으로 하자고 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이우환 화백(80)이 경찰과 ‘진실 공방’을 벌이게 됐다. 이 화백은 ‘점으로부터 No.780217’ 등 작품 13점을 둘러싼 위작(僞作) 논란에 대해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4점은 ‘위작’이라고 인정하고, 다른 작품은 진품인 걸로 하자”고 자신을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이 화백은 30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 작품을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건 자기 자식을 죽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논란이 된 13점 모두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호흡과 리듬, 붓을 쓰는 방법 등은 그림의 ‘지문’과 같은 것”이라며 “제3자가 아무리 잘 그려도 베낄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생존 작가의 의견이 우선돼야 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상식”이라며 “작가인 나 이우환의 말을 믿어달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경찰의 위작 인정 제의에 대해서는 “13점이 모두 내 호흡으로 그린 작품인데 어떻게 몇 점은 위작이고, 몇 점은 진품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진작과 위작을 구분하는 방법과 관련해 이 화백은 “나는 여러 색을 섞은 군청색을 주로 사용한다”며 “경찰이 작품을 위조했다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동영상과 완성품을 보여줬는데, 그 사람은 하나의 색만을 썼다”고 설명했다. 위조화가와 대질 심문도 불사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서명이 위조된 작품이 여러 점 발견되고, 일련번호가 같은 작품이 3점이나 발견되는 등 작품 유통 구조가 투명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1970년대 후반에는 작품을 1년에 300~400점씩 그렸다”며 “먹고살기도 힘들었을 때였고, 작품이 잘 팔릴 때도 아니어서 화랑에 작품을 주면 작품이 팔려도 돈을 받지 못할 만큼 관리가 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작품 중 위작이 한 점도 없다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내가 확인한 범위 내에서는 없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작품 거래가 끊길까 봐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나는 유럽, 미국에서 판매되는 그림 덕분에 먹고사는 만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 화백의 작품은 위작이 유통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지난해 초부터 경매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는 “렘브란트든 다빈치든 작품을 만드는 비밀을 공개하는 일은 세계 어디에서도 있을 수 없다”며 “국가 권력이 합심해서 한 작가를 떡으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경찰 수사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경찰은 즉각 반발했다. 이 화백 위작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김성운 지능2계장은 “경찰이 이 화백에게 ‘4점은 위작인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진품인 것으로 하자’고 회유했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김 계장은 “경찰은 위작 의혹을 받은 13점 모두를 위작으로 판단하고 수사하고 있다”며 “논란이 되니 일부만 인정하고 끊고 가자는 식의 생각을 하는 수사관은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 화백의 주장과 별개로 경찰은 위작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이 화백의 위작이라고 판명한 그림을 유통한 총책 이모씨(68)에 대해 사서명위조 및 사기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그간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해온 위조화가 이모씨(39)는 체포했다.

고재연/마지혜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