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삭기 덜 팔라는 정부…반발하는 업계
국토교통부가 공급 과잉으로 수익이 급감하고 있는 굴삭기 대여업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앞으로 2년간 굴삭기 공급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음달 이 방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굴삭기 수급 조절이 현실화하면 국내 1만3000여개 건설기계 대여업체들은 반길지 모르지만 연간 1만대의 굴삭기를 판매하는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중공업,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등 국내 굴삭기 제조업체들은 수요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국토부 “대여업계 위해 불가피”

국토부는 다음달 하순 차관 주재로 건설기계수급조절위원회를 열고 국내 굴삭기시장에 대해 신규 등록 제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29일 관련 정책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맡긴 국토연구원으로부터 중간 보고를 받고 대한건설기계협회 등 업계 의견도 들었다. 국토부는 2015년부터 이를 추진해왔지만 통상마찰 우려가 있다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건설기계업계의 지적에 따라 국토연구원에 관련 연구 용역을 맡겼다.

정부 관계자는 “굴삭기에 대해 정부가 수급 조절을 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라는 결론이 나온 상황”이라며 “상대 국가에서 통상 문제로 제소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만큼 이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수급 조절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국토연구원의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연간 굴삭기 신규 등록 대수에 상한선을 두는 ‘제한적 수급 조절’ 등 다양한 제도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건설기계 대여업체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2009년 덤프트럭과 콘크리트믹서트럭, 작년 콘크리트펌프 트럭 등에 대해 수급 조절을 하고 있다.

건설기계 대여업체로 구성된 대한건설기계협회 관계자는 “건설 경기 활황기에 굴삭기시장에 진입한 대여업체들이 불황기에도 줄지 않아 출혈 경쟁이 빚어지고 있다”며 “대부분 굴삭기 1~2대를 가진 영세사업자라 정부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굴삭기 가동률이 40%대로 두 대 중 한 대는 사업을 못해 놀고 있기 때문에 수급 조절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업계 “통상마찰, 암시장 형성 우려”

세계 1위 굴삭기업체인 미국 캐터필러는 이달 중순 강호인 국토부 장관과 주형환 산업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정부의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가 통상마찰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자동차와 건설기계 공급자 수에 대해 정부의 인위적 제한을 금지하고 있는 한·미 FTA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국내 3대 굴삭기 제조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중공업, 볼보건설기계코리아다. 국내 굴삭기 내수시장은 1조원(1만대) 규모로 두산인프라코어가 40%가량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볼보가 21%, 현대중공업이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시장은 수입 업체인 미국 캐터필러, 일본 고마쓰 히타치 코벨코 등이 맡고 있다. 이들은 굴삭기 국내 판매 물량의 70%가량을 대여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정부가 신규 등록을 제한하면 이 물량이 재고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굴삭기 교체 수요를 제외한 신규 구입에 따른 매출이 당장 막히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 규제로 △통상마찰 △산업 경쟁력 저하 △암시장을 통한 사업권 거래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굴삭기업계 관계자는 “신규 등록이 제한되면 장비 노후화에 따른 안전과 환경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기존 사업권이 높은 가격을 주고 매매되는 암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 고객인 대여업체의 눈치를 살피느라 국토부의 수급 조절 정책에 겉으로는 반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기계 부품업체와 판매업체로 구성된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 관계자는 “굴삭기 제조 관련 부품업체 750개와 관련 임직원 5만여명의 생계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24일 “건설기계수급조절제도는 위헌 논란이 있고 대여업체들의 안정화라는 애초 입법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