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 소로스 미스터리…"이번엔 파운드 샀다"
영국 파운드화가 24년 만에 또다시 헤지펀드의 표적이 됐다. 1992년 당시에는 영국이 유럽의 환율 시스템을 지키려다가 공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브렉시트)하기로 결정해 화를 자초했다.

1992년 9월 헤지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사진)가 주도하는 퀀텀펀드는 100억달러를 동원해 파운드화를 투매했다. 영국 정부는 외환보유액(달러)을 풀어 시장에서 파운드화를 사들였지만 파운드화의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당시 영국 중앙은행(BOE)은 독일 마르크화에 연동된 유럽 환율 메커니즘(ERM)을 지지하기 위해 소로스와 전쟁을 벌였다.

1990년 독일은 동독과의 통일비용을 마련하려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마르크화를 찍어냈다. 그러면서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초고금리 정책을 시행했다. 마르크화가 비정상적으로 고평가됐지만 다른 유럽국가들도 환율 변동폭을 유지하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 이로 인해 경기가 침체에 빠지고 실업률이 급등하자 ERM에서 하나둘 탈퇴했다.

하지만 영국은 독일을 배신할 수 없다며 마르크화에 파운드화를 연동하는 ERM을 사수하겠다고 선언했다. ERM 내 파운드화가 고평가돼 있고, BOE의 달러 보유액도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소로스는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했다. 다른 헤지펀드까지 합세했다. BOE는 투자자들의 파운드화 매수를 유도하려고 하루에 이자율을 두 번이나 올리며 맞섰지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외환보유액도 바닥났다.

이후 파운드화는 약 20% 폭락했고, 소로스는 10억달러에 이르는 차익을 챙겼다. 그 해 9월16일 결국 영국은 ERM을 탈퇴하고 변동환율 시스템으로 돌아섰다. 소로스는 10억달러를 벌면서 영국 중앙은행을 굴복시킨 ‘검은 수요일’의 주인공으로 시장에 각인됐다.

그런 소로스가 이번에는 파운드화 매도 공격에 나서지 않고, 오히려 롱(long:매수) 포지션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파운드화의 저주’를 통해 브렉시트로 큰돈을 벌었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해명에 나선 것이다.

소로스는 영국의 브렉시트 찬반투표 전 “브렉시트 발생 시 파운드화가 달러 대비 20% 폭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파운드화는 브렉시트 여파로 최근 2거래일 동안 14% 가까이 급락했다. 그는 지난 25일에는 “브렉시트로 EU 분열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며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파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맞먹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