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60세 아들 노인대학 보내기
“90살이 돼 60살 아들 노인대학 입학시켜주면, 그때가 부모 구실 끝!” 소주잔을 나누던 옛 친구들의 얘기는 결국 자식 문제였다. 정치는 환멸, 사회 꼴도 온통 못마땅한 나이가 된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살펴봐주나’로 옥신각신하다 나온 얘기였다. 대학만 보내면 지원 끝이라고 하던 친구는 벌써 입을 닫았다. 60세라야 독립? 고(高)실업, 비(非)혼인, 저(低)출산 시대의 희비극이다.

캥거루족 코쿤족 니트족 프리터족, 표현도 다양하다. 3포였던 N포세대가 이젠 7포세대라고 한다. 젊은이를 표로 계산하는 정치꾼들의 청춘 마케팅이 이런 현상을 사회적 트렌드로 굳힌 측면도 있다. 준비 없이 맞게 된 장기 저성장 시대가 온실 속 화초마냥 커온 젊은 세대들을 의존적 싱글족의 신인류로 만들었다.

80조 저출산 대책, 잘못된 처방

초식남과 골드미스의 범람은 경제 활력 저하와 결코 무관치 않다. 올 들어 4월까지 결혼 건수는 9만4200건, 11년 만에 10만건 아래다. 신생아는 14만7900명, 월별 통계가 나온 2000년 이후 최저다. 초혼 평균 연령도 남 35.8세, 여 32.7세다. 10년 새 2.4세나 올라갔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저출산 문제를 풀겠다며 최근 10년간 정부가 쏟아부은 예산만 물경 80조원이다. 그런데도 효과가 없다. 기존 정책을 다 바꿔야 할 상황이다. 물론 적정 인구를 출산에만 기댈 필요는 없다. 이주자를 받아들여도 된다. 고령층의 생산활동 또한 계속 길어진다.

그래도 아들딸들이 결혼을 않는, 못하는 이유는 잘 살펴봐야 한다. “남자가 결혼 않는 이유요? 돈이 없어서죠.” “여자요? 남자가 돈이 없어서죠.” 우리 사무실 인턴의 설명이 영 썰렁개그는 아니다. 결국 경제가,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는 악순환이 걱정이다. 어떻게든 결혼과 가정 제도를 유지하는 게 복지비용을 줄이는 첩경이기도 하다.

소비 문제도 그렇다. 캠페인 정도로 늘어날 소비 부진이 아니다. 미증유의 고령화시대, 인류의 본능적 자기보호 기제가 발동했다. 여기서도 일본을 닮아간다. 젊은이는 쓸 돈이 없고, 자산을 쥔 중장년은 갈 길이 멀다며 안 쓴다.

증여세 공제 늘리면 소비도 회복

비결혼·저출산 난제도 풀고 소비도 살릴 해법 하나를 제안한다. 근래 일본에서 사회적 이슈가 된, 우리사회에도 곧 닥칠 노노(老老)상속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상속·증여라고 묶어 취급하는, 명목세율도 같은 이 세금을 일정 선까지는 같게 만드는 것이다. 같은 세율이지만 상속은 다양한 공제로 통상 10억원, 여건에 따라 15억원 정도까지 비과세다. 반면 증여는 1인당 10년간 5000만원까지만 비과세다. 증여의 비과세 기준을 상당폭 올리자는 것이다. 증여의 활성화는 당장 소비 확대에 도움이 된다. 90살 부모가 60대 노인 아들에게 살림을 물려주는 노노상속의 부작용도 해결할 수 있다.

흙수저 논쟁 수준에 얽매이면 논의조차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중산층 자녀도 해외 유학을 가는 사회다. 그런데도 연간 1억원씩의 유학비용에 증여세가 부과됐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서울로 대학을 보내도 10년 5000만원 증여 한도는 훌쩍 넘어선다. 이런 현실을 인정해 성인 아들·손자의 결혼비용이나 주택 구입비를 사전 상속으로 보고 증여세 공제 기준을 확 올려보자. 소비 활성화만이 아니다. 개인의 2세, 3세 생산을 이런 식으로 개인에게 맡기면 정부는 선별적 출산복지에 치중할 수 있다. 증여 활성화 제안이 우리사회에서 수용될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