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현실화하자 각국 중앙은행들이 뉴스의 맨 앞자리에 등장했다. 돈의 흐름을 쥔 중앙은행들은 세계 금융시장의 혼돈을 가라앉히는 게 우선이라며 일제히 ‘정책 공조’를 강조했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공조가 얼마나 갈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브렉시트 충격이 실물 경제로 옮겨붙으면 자국 경제부터 살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서다. 통화 강세를 겪고 있는 일본과 미국, 스위스가 수출 감소를 우려해 완화정책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이 또다시 ‘통화 전쟁’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브렉시트 이후] 손발 맞춘 중앙은행 수장들…정책 공조 '가면' 쓴 통화전쟁?
발빠른 정책 공조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BIS) 연례회의에서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시장 안정을 위해 긴밀하게 협조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중앙은행이 2500억파운드(약 405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지지의 뜻을 나타냈다. 지난 27일 BIS 회의에서 돌아온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곧장 3조원의 유동성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중앙은행의 정책 공조 목소리에 금융시장은 잠시나마 안도했다. 한은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각국은 거시건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했다”며 “브렉시트 파장에 대비해 좀 더 발빠른 정책 공조에 나서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각국 중앙은행들은 유동성 공급, 통화스와프 체결 등으로 힘을 합쳤지만 개별 금융회사들이 붕괴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미·일·스위스의 딜레마

김인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브렉시트로 인해 당분간 환율 급변동은 불가피하다”며 “이 과정에서 타격을 받는 국가들은 자구책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 약세를 무기로 경제 성장을 추진했던 일본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이다. 엔화 가치는 브렉시트 결정 뒤 달러당 99엔 선까지 급등했다. 자동차 등 수출기업들의 수익성이 당장 위협받고 있다. 다음달 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 일부에선 엔고에 개입할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금융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연내 추가 금융 완화를 두 차례 정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금리 인상을 내년 이후로 미룰 것이란 예상이 많다. 달러 강세가 수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아예 금리 인하를 검토할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도 있다. 스위스는 이미 자국 프랑화 급등에 대비해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평소라면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내리려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국제사회의 불만이 나오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같은 위기엔 돈줄을 느슨하게 죄는 것이 글로벌 시장 안정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통화 약세 국가도 추가 완화 움직임

통화 약세인 다른 나라들까지 완화 행진에 가세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과 EU 외에 한국에서도 추가 통화 완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미뤄지는 것은 기회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위원은 “통화정책의 한계에 직면한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은 ‘헬리콥터 머니’를 포함한 창의적인 통화정책을 마련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책 공조(시장 안정)’의 탈을 쓴 통화전쟁(통화 절하)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미국 등을 제외하면 일제히 통화 약세라 소리 없이 웃을 수 있지만, 통화 절하가 인접국과의 경쟁으로 옮겨붙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과 중국이 통화 약세를 추진하면 한국 또한 이를 주시해야 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더욱 걱정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은 “지금은 통화전쟁을 선언하기에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이 너무 불안하다”며 “향후 통화전쟁이 벌어지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은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미/심성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