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박서보·이우환, 한국 추상화 '빅3'
‘미술시장의 황제주’로 꼽히는 수화 김환기(1913~1974)가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화가로 뽑혔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28일 미술대학 교수와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등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를 추천받은 결과, 김환기가 가장 많은 14표(3명까지 중복 투표 가능)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묘법’ 시리즈로 유명한 박서보(13표), 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12표), 유영국(4표), 하종현(3표)이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에는 미술평론가 김복영·윤진섭·최열을 비롯해 김영호 중앙대 교수, 서성록 안동대 교수, 송미숙 성신여대 명예교수,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참여했다. 설문 참가자들은 한국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대중적 인지도, 기법의 독창성 등 종합적인 면에서 김환기를 추상미술 대표 작가로 손꼽았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독창적인 한국미를 선보였다. 1933~1936년 일본 니혼대 미술학부에서 추상미술을 배웠다. 1937년 귀국한 뒤 6·25전쟁 전후 격동기를 거쳐 파리(1950년대 중후반), 뉴욕(1970년대)에서 생활하는 등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체험하며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 구상과 추상을 통해 독창적인 한국미를 선보였다. ‘한국의 피카소’로도 불리는 그는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16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화백이 뉴욕 거주 시절에 제작한 1971년 작 점화 ‘19-Ⅶ-71 #209’는 지난 4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48억6750만원에 팔려 국내 미술품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국 추상미술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 관한 순위 조사에선 작가보다 화랑 경영자와 미술평론가가 상위권에 포진했다. 1세대 미술평론가로 추상미술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정립한 이일(1932~1997)이 1위를 차지했으며,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과 미술평론가 윤진섭(공동 2위), 오광수(4위), 이우환(5위)이 뒤를 이었다. 박 회장은 알려지지 않은 추상미술 작가를 발굴해 소개했다는 점에서, 윤씨는 단색화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많은 표를 얻었다.

한국 추상미술을 조망한 전시 중 가장 의미 있는 전시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는 1975년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전’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한국의 단색화전’은 기획 의도와 구성의 적절성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2위(8표)에 올랐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다음달 5일부터 10월29일까지 서울 홍지동 전시장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와 관련한 자료를 전시하는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전을 연다.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 발족부터 최근까지 한국 추상미술사의 주요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김달진 관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작품과 추상미술 관련 단행본, 도록, 팸플릿, 언론 기사, 평론, 포스터, 사진 등 270여점을 전시한다.

김환기가 군 복무 중이던 시절 홍익대 제자에게 보낸 편지나 이우환 화백이 2006년 신옥진 부산공간화랑 대표에게 보낸 엽서 등 작가의 일상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도 포함됐다. 미술평론가에게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를 들어볼 수 있는 강좌와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 ‘마음을 담은 그림, 추상’(7월7~28일)도 준비했다.

김 관장은 “아카이브 전시를 통해 한국 추상미술의 흐름을 개괄하고자 했다”며 “직접 발굴한 사료적 가치가 큰 미술 자료를 볼 기회”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