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시 게이운칸의 온천
야마나시 게이운칸의 온천
일본 여행의 백미는 료칸(旅館)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아닐까.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근 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저녁 정찬인 가이세키 요리는 또 어떤가. 그 지역의 신선한 재료로 만든 료칸의 가이세키는 일본 요리의 정수를 경험하게 해준다.

더운 여름에 무슨 료칸 온천여행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뜻밖에도 많은 이들이 여름 온천여행을 즐긴다. 조일상 하나투어 과장은 “온천여행이 특정 계절에만 몰리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 인기 있는 여행지이며 오히려 여름철 수요가 더 많다”고 말했다. 온천과 음식이 좋은 료칸으로 가보자.

히로시마=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히로시마 하면 흔히 원폭돔을 떠올리지만 현재의 히로시마는 단언컨대 일본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이자 휴양도시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온천과 느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원,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한 도시가 히로시마다. 원폭돔과 함께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풍경은 미야지마다. ‘신발 밑창에 사슴똥을 묻히지 않고는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사슴이 많은 곳이자 일본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지어진 이쓰쿠시마 신사(嚴島神社)가 있는 곳이다.

미야지마에 있는 료칸인 이와소(iwaso.com)는 1854년에 문을 열었다. 왕족과 작가 등 수많은 유명인사가 방문한 곳으로, 나무로 만든 운치 있는 온천은 꼭 한번 경험해볼 만하다. 노천탕에서 바라보는 계곡 풍광도 멋지다.

방도, 온천도, 료칸을 둘러싼 풍경도 좋지만 이 료칸의 하이라이트는 요리다. 히로시마에서 나는 재료만을 사용해 내놓는 가이세키가 압권이다. 생선과 초밥, 고기 등 화려한 맛을 펼쳐보이는 이 료칸의 가이세키는 ‘미슐랭’ 별 하나를 받았다고 한다. 료칸이 미슐랭 별을 받은 곳은 이와소가 일본에서는 유일하다.

오후테이(ofutei.com) 료칸도 훌륭하다. 대부분의 객실이 한 장의 커다란 유리를 사용한 오션 뷰로 돼 있다. 세토 내해에 떠있는 섬들을 왕래하는 배를 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옥상에는 프리미엄 층 이용자 전용 노천 목욕탕이 있는데,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노천욕이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니치난에 있는 지조안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
니치난에 있는 지조안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
다니키치 우에노(anagomeshi.com)는 4대째 이어지고 있는 장어덮밥집. 평일에는 시라야키와 밑반찬이 곁들여진 ‘아나고메시 정식’만 제공하지만 금요일과 주말에는 아나고 가마야키메시를 중심으로 한 창작 일본요리 코스와 ‘아나고즈쿠시 코스’를 먹을 수 있다.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미야자키는 연평균 기온이 17도, 한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을 유지해 ‘아시아의 하와이’로 불리는 곳이다. 한국 프로야구 팀의 전지훈련 장소로도 애용된다. 풍광 좋은 곳에는 그에 버금가는 맛있는 음식이 있듯, 미야자키는 미식가들에게 맛의 고장으로도 이름이 높다.

미야자키 남쪽에 있는 니치난(日南)시에는 지조안(地藏庵·jizoan.jp)이라는 료칸이 있다. 미야자키에서 유일하다는 오두막 형태의 일본식 료칸인데, 6개의 객실만 운영하고 있다. 료칸 온천수의 질도 일본 온천 중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온천도 온천이지만, 지조안의 하이라이트는 가이세키 요리다. 한때 암자로 쓰이던 곳답게 모든 요리를 채소로 만들고 고기와 생선, 계란을 포함해 동물성 음식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식재료를 미야자키에서 난 것만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요리는 15~16가지로 구성되는데 하나하나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자부심이 대단해 이 요리를 ‘지조안풍의 창작정진요리(地藏庵風創作精進料理)’라 이름 붙였다. 간장을 발라 구운 표고버섯, 부드러운 무조림, 쫄깃한 식감의 청포묵, 다양한 나물, 고추기름을 넣어 만든 매콤한 두부국 등 상에 오른 모든 요리는 정갈하고 산뜻하다.

미야자키의 오비마을 향토음식인 가다랑어 구이정식
미야자키의 오비마을 향토음식인 가다랑어 구이정식
오비마을은 이토 가문이 300여년간 지켜온 오비성과 그 주변에 형성된 성하마을(城下町)로 옛 모습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1800년대 후반 모두 해체됐다가 1970년대 말 재현했는데 무사의 저택을 상징하는 대문, 운치 있는 돌담, 회반죽 벽이 남아있는 마을 거리는 ‘중요전통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돼 있다. 오비마을에서는 이 지역 향토요리인 ‘니치난 잇폰즈리(一本釣り)가쓰오(カツオ)아부루리쥬(炙リ重)’를 맛보자. 우리말로 옮기면 가다랑어 구이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와사비와 올리브오일 소스를 바른 회는 날생선인 사시미와는 다른 맛을 내고, 풍로에 구워도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구울 때는 한쪽만 가볍게 굽는 것이 요령이다.

온천 왕국 일본의 2500여개 온천 중에서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있다면 규슈 북서부에 있는 사가현이다. 일본 ‘3대 미백(미인) 온천’으로 불리는 우레시노 온천과 다케오 온천이 이곳에 있다. 최근에는 제주 올레의 일본 진출작인 규슈 올레 우레시노 코스가 있어 찾아가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1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레시노 온천은 미끈거리는 알칼리 온천수로 유명하다. 촉촉하게 피부로 스며드는 온천수는 비누로 씻어 내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와타야 벳소(wataya.co.jp)는 우레시노 온천을 대표하는 료칸이다. 거대한 부지에 자리한 5개의 숙박동과 넓은 일본 정원은 온천 리조트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일본 국왕이 우레시노를 방문할 때 자주 찾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우레시노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다케오 온천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 출정하기 전, 무사들을 데려다가 피로를 풀어준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온천이다. 다케오 온천 지구 가운데 자리한 와라쿠엔(warakuen.co.jp)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머물렀던 료칸. 일본 최초로 녹차탕을 만든 곳이기도 하다.


사가현 서쪽에 자리한 아리타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타 도자기를 제작하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잡혀온 도공 이삼평이 뿌리를 내리며 만들어졌다. 이삼평의 제사를 올리는 도잔신사 경내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백자로 만든 도리이가 있다. 지금도 이삼평의 14대손인 가네가에 삼베는 이곳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있으며 그의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다케오 시에 있는 나나사이(michinoeki-yamauchi.com)는 이 지역에서만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뷔페식당.

화학조미료나 첨가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접시는 최고급 도자기인 백아리타도자기를 사용한다.

야마나시현 미나미알프스 자락의 하야카와 계곡에는 니시야마 온천 지역이 있다. 하야카와 계곡은 워낙 깊어 길도 구절양장이다. 40인승 이상의 대형 버스는 들어갈 수 없고 온천 측에서 보내주는 미니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료칸인 게이운칸의 아침식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료칸인 게이운칸의 아침식사
이곳에 자리한 게이운칸(www.keiunkan.co.jp)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료칸으로 유명하다. 705년에 문을 연 뒤 5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료칸 입구에는 기네스 인증서가 전시돼 있어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료칸임을 입증하고 있다.

게이운칸은 ‘히토’라 불리는 료칸에 속한다. 히토는 ‘숨겨진 료칸’이라는 뜻. 오가는 여정이 힘들지만 하룻밤 묵어보면 사람들이 왜 이곳이 오는지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곳이다.

객실에 들어서면 그 깔끔함에 놀란다. 천년의 세월을 느낄 수 없을 정도다. 외관 역시 그러한데 이유는 매년 증개축과 리모델링을 거쳤기 때문이다. 온천은 노천탕을 비롯해 대형탕과 가시키리(가족렌털)를 갖추고 있다. 온천수는 51.5도의 원천이 1분에 1630L씩 솟아나며, 전 객실의 욕탕은 원천에서 나오는 온천수를 사용한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노천탕은 운치가 그만이다. 건물 옥상에 있는 전망노천탕과 대형탕에서도 하야카와 계곡의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기시키리도 운치가 그만이다.

가이세키 요리 또한 역사만큼이나 훌륭하다. 계곡 깊숙이 자리잡은 료칸의 특성상 해산물을 제외하고는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만으로 만들어낸다. 죽순과 마, 무화과, 산나물 등으로 이루어진 가이세키는 지금까지 먹던 해산물 위주의 가이세키와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달콤한 송어회와 솔잎으로 구운 산천어, 후지산에서 채취한 돌판에 구워먹는 소고기 또한 별미다. 독특한 모양의 작고 예쁜 접시에 담긴 아침 역시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다.

야마나시의 가쓰누마에 있는 와이너리
야마나시의 가쓰누마에 있는 와이너리
야마나시의 가쓰누마 지역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곳으로 80여곳의 와이너리가 있다. 일본 와인의 30%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이곳에 있는 ‘시라유리 양조’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도 등장한 곳으로 향긋하고 달콤한 고슈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혼슈 서남부 주코쿠 지방의 오카야마현은 임진왜란 이후 1607년부터 파견된 조선통신사의 발길이 닿기 시작하면서 한반도와 교류해왔다. 한양을 출발한 통신사 일행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쓰시마섬을 지나 거쳐 갔던 곳이 오카야마의 항구도시 우시마도다.

오카야마현 유바라 온천마을
오카야마현 유바라 온천마을
오카야마를 대표하는 명소는 고라쿠엔으로 일본 3대 정원 중 한 곳으로 꼽힌다. 1700년 완성한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회유식(回遊式) 정원으로, 연못을 중심으로 인공 섬과 인공 산, 언덕, 숲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라쿠엔만큼 유명한 곳이 서일본을 대표하는 노천온천인 유바라(湯源) 온천이다. 오카야마 시에서 차로 1시간쯤 달리면 산을 가로막은 커다란 댐을 배경으로 3개의 노천탕인 ‘스나유’(砂湯)가 나타난다. 수질이 탁월해 ‘온천 물로 병을 치유한다’는 뜻의 ‘탕치온천’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변은 수풀이 우거진 계곡이고 들리는 건 물소리뿐이라 풍광도 기막히다. 24시간 무료로 개방되는데 남녀혼탕이라는 점을 알아둘 것. 대낮에도 수건을 두르고 혼욕을 즐기는 일본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여성은 원피스 형태의 욕의를 입기도 하는데 주변 료칸에서 500엔에 빌려 준다. 수질과 풍광이 좋아 서일본 노천온천의 요코즈나(스모선수의 최고등급)로 불리기도 한다.

스나유 맞은 편에 자리한 료칸인 핫케이(hakkei-yubara.jp)는 세심한 료칸의 서비스와 수준 높은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이 지역에서 나는 제철 유기농 식재료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가이세키가 일품이다. 저녁과 아침, 두 끼 식사에 사용되는 채소만 무려 5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17세기에 조성돼 잘 보존된 에도시대의 창고와 상점가다. 400m의 인공운하가 있는데 그 양 옆으로 특산품 상점과 공방 등이 모여 있다. 운하에는 삿대로 젓는 거룻배가 관광객을 태우고 오간다. 오카야마 히루젠 고원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이어지는 고원지대다. 허브가든과 와이너리 목장 등이 조성돼 있다. 특히 이곳 목장에서는 저지(Jersey)라는 영국산 품종의 젖소가 자라는데 저지에서 짜낸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치즈 등이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